김기만 국가핵융합연구소장
[아침마당]

마부작침(磨斧作針)이란 말이 있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중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도끼로 바늘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오랜 시간 핵융합 연구에 매진하면서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핵융합은 언제 상용화되느냐”인데,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 바로 ‘마부작침’이다.

핵융합기술은 전 세계가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주목하고, 잠재적인 경제적 가치 또한 인정받는 기술이다. 수십 년 뒤에 본격적으로 상용화 될 미래 에너지 기술이지만, 이를 선점하기 위한 각축전은 이미 시작됐다. 우리나라 뿐 만 아니라 미국, EU, 일본, 중국 등의 주요 선진국도 핵융합 연구에 투자를 진행하며, 사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EU는 Horizon 2020 프로그램을 통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핵융합실증로 연구를 위해 약 32억유로를 투자할 예정이다. 일본 역시 EU와 공동으로 초전도핵융합장치인 JT-60SA를 개발을 위해 약 1조원을 투자하고 있다. 중국은 핵융합 인력 양성 및 핵융합장치 EAST의 성능향상과 더불어 핵융합실증로 단계로 가기 위한 장치인 CFETR 개발에 공격적으로 투자를 진행하는 등 세계 선진국들이 앞 다투어 핵융합기술발전에 막강한 자금과 인력을 투자하고 있다.

우리나라 핵융합 연구개발 활동은 1995년부터 시작해 2007년 초전도핵융합장치인 KSTAR를 완공하면서 본격적인 연구개발 활동을 추진해 많은 경제·기술적 성과를 창출했다. 더불어 핵융합 상용화 가능성 최종 검증을 위해 EU, 일본, 러시아,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과 공동으로 핵융합실험로 건설을 추진하는 ITER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핵융합 연구의 후발주자였지만 첨단 핵융합기술의 집약체인 KSTAR를 통해 세계적 수준의 연구 성과를 달성하고, 핵융합 연구를 빠르게 선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들이 ITER 사업과 같은 국제 공동 연구 뿐 아니라 각국의 자체 핵융합 연구에도 이렇게 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핵융합에너지 상용화가 가져올 인류 생활의 혁신과 연구과정에서 파급되는 경제효과 때문이다. 그 효과는 핵융합에너지의 상용화 이전에도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ITER에 참여하며 진공용기, 초전도자석, 삼중수소 운송·저장, 전력공급계통, 블랭킷 등 총 10개 품목을 국내기술로 제작해 공급하고 있다. 이 조달품목들은 대부분 국내 산업체를 통해 제작된다. 뿐만 아니라 ITER국제기구 및 타 회원국 역시 ITER건설을 위한 대규모 사업들의 입찰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산업체와 기관이 이들로부터 직접 사업을 수주하고 있기도 하다. ITER사업 관련 해외 직접 수주 금액은 지금까지 총 93건으로 무려 5400억원이다.

KSTAR와 ITER 사업 등 핵융합 연구에 참여한 국내 기업은 250여개에 달한다. 이 기업들은 핵융합 연구 과정에서 얻은 기술력으로 국내 핵융합 연구 역량을 높일 뿐 아니라 ITER 사업의 국제 수주를 비롯해 항공 우주, 천문, 가속기 분야 등 타 거대과학 분야의 사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하나의 산업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핵융합에너지의 상용화까지 수십 년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핵융합 참여 기업들은 ITER사업을 통해 핵융합연구의 경제적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후 상용화 기술 확보에 성공한다면 핵융합 발전소 건설이 본격화 되는 시점에는 연구 과정에 참여한 한국 기업이 주목 받을 수 있다. 이처럼 핵융합연구개발은 우리나라가 차세대 에너지 강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기회이며 대한민국의 경제를 이끌 잠재적인 거대과학임을 확신한다.

핵융합 연구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은 아직 크지 않다. 상용화는 너무 먼 이야기가 아니냐는 우려 섞인 의견도 있다. 하지만 많은 연구자가 마부작침의 마음으로 쉬지 않고 핵융합 연구를 이끌어 가고, 지속적인 국가의 관심과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꿀 핵융합에너지 상용화로 가는 탄탄한 길이 마련될 것이다. 핵융합에너지 시대를 맞이하는 대한민국은 경제대국으로 일어날 수 있는 히든카드를 손에 쥐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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