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근 대전문학관장
[화요글밭]

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밝았지만 국민들의 마음은 어둡고 착잡하다.

순수성이 퇴색해가는 촛불 집회와 국회국정조사 청문회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과정을 지켜보는 국민은 '정유년에는 진정 희망의 메시지를 알리는 닭 울음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을까'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자신은 일 원 한 푼 부당하게 이득을 취한 일이 없다고 모든 과오를 부하들에게 떠넘기며, 최순실이 저지른 과오는 국정의 1% 정도밖에 안 된다는 궤변을 늘어놓는 박 대통령의 행태를 바라보는 양식 있는 사람들은, 표를 찍은 손가락을 자르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대통령의 마음 자세가 그러한데, 소신 있게 직언하는 관리들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임금이 밝으면 신하는 곧다'라는 말이 새삼 가슴을 저리게 한다.

조선 숙종 때의 일이다. 당하관 벼슬에 있던 이관명이 암행어사가 돼 영남 지방을 시찰하고 돌아와 숙종에게 보고한다. "통영에 소속된 섬 하나가 있는데, 무슨 일인지 대궐의 후궁 한 분의 소유로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섬 관리의 수탈이 어찌나 심한지 백성들의 궁핍을 차마 눈으로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자 숙종은 화를 벌컥 내면서 책상을 내리친다. "과인이 그 조그만 섬 하나를 후궁에게 준 것이 그렇게도 불찰이란 말인가!"

갑자기 궐내의 분위기가 싸늘해졌지만, 이관명은 조금도 굽히지 않고 다시 아뢴다. "신은 어사로 어명을 받들고 밖으로 나가 1년 동안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하의 지나친 행동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누구 하나 전하께 진언을 올리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러니 저를 비롯해 이제껏 전하에게 직언하지 못한 대신들도 아울러 법으로 다스려주십시오."

숙종은 여러 신하 앞에서 창피를 당하자 화가 치밀어 올라 승지를 불러 전교를 쓰라고 명한다.

신하들은 이관명에게 큰 벌이 내려질 것으로 알고 숨을 죽인다.

그러나 숙종의 입에서는 뜻밖의 교지가 내려진다. "전 수의어사 이관명에게 부제학을 제수한다."

그리고 숙종은 다시 명한다.

"부제학 이관명에게 홍문제학을 제수한다." 신하들이 저마다 웅성거리는데 또다시 숙종은 승지에게 명을 내린다. "홍문제학 이관명에게 예조참판을 제수한다." 그러고 나서 숙종은 "경의 간언으로 이제 과인의 잘못을 깨달았소"라고 말한다.

권력 앞에서 그릇된 것을 그르다고 말하는 용기도 훌륭하지만 충직한 신하를 알아보는 숙종 임금의 안목은 더욱 훌륭하다. 이번 경악할 국정농단은 어디에서 발단한 것인가.

일차적인 책임은 혜안이 부족한 박대통령의 인품과 지도력에 있다. 그리고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을 그르다고 직언하지 못한 관리들에게 있다. 우리가 꿈꾸는 정의를 외칠 수 있는 사회는 다름 아닌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떳떳하게 외칠 수 있는 소통의 사회에서만이 가능하다.

그래서 한 마디 한다. 이제 과도한 촛불 집회는 멈추자. 헌법재판소 앞에서 맞불 집회를 멈추고, 성숙한 시민의 자세로 법의 공정한 심판을 기다리자. 법은 누구의 위에서고 군림할 수 없고,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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