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수석연구위원
[시론]

1594년 2월5일 새벽에 이순신이 꾼 꿈입니다. 그는 새벽 꿈 속에서 명마를 타고 바위 산 꼭대기에 단숨에 뛰어 오릅니다. 산꼭대기에 오르니 아름다운 산맥과 봉오리들이 동서로 뻗쳐진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꿈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좀 더 나아갑니다. 산마루 위에 편평한 곳이 있어서 그는 그곳에 자리 잡으려다가 잠에서 깹니다. 좋은 꿈을 꾸다가 깨고 나면 아쉬워서 다시 꿈을 꾸려고 잠을 청하는데 전 혀 다른 꿈을 꾸기도 합니다. 그에게는 아름다운 여인이 혼자 앉아 손짓을 하고 소매를 붙잡는데 그가 소매를 뿌리치고 아는 척을 하지 않는 꿈을 꾸게 됩니다.

이순신이 꾼 꿈을 요약하면 바위산을 말을 타고 한 달음에 꼭대기에 올라서는데 천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니 마음만 먹으면 천하의 터를 닦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결심입니다. 하지만 꿈 길에서 만난 아름다운 여인의 손짓도 뿌리치고 맙니다.

같은 해 9월 20일 밤에 그는 섬이 자신을 기리는 꿈을 꿉니다. 꿈속에서 섬 하나가 달려오다가 이순신 앞에 서는데 마치 그 소리가 우레처럼 천지를 진동합니다. 이는 마치 위대한 사람의 탄생을 위한 자연의 경배와 같은 의식입니다. 그는 여기서 섬이 자신에게 바치는 장쾌한 의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위대한 사람이 태어나거나 하늘의 뜻을 성취할 때 자연이 이를 기려줍니다. 예수가 갈릴리 호수 위를 걸어가는 기적을 행하거나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할 때 천지가 진동하고 캄캄해지는 등 자연은 위대한 사람을 기린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를 왜적이 스스로 멸망할 것이라는 징조라고 스스로 해석함으로써 애써 자신이 결정해야 할 두번째 기회도 포기하는 듯 합니다. 이어서 그는 다시 꿈을 꿉니다. 자신이 명마를 타고 천천히 가는 모습입니다. 그는 이 장면을 천하가 이순신에게 순응하기를 기다리는 것으로 해석하는 대신에 자신이 임금님의 부르심을 받을 것으로 해석합니다. 세 번째의 기회도 포기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 당시 조선 백성 대다수는 세상이 뒤 바뀌길 꿈꾸고 있는 줄 모르고 꿈꾸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순신도 세상이 뒤바뀌길 바라는 꿈을 자신이 꿈 꾸고 있다는 사실을 오직 꿈속에서만 꿈꿀 수 있었을 지 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꿈을 현실로 이루어나가고자 도전하는 용기를 지닌 진정한 지도자를 필요로 합니다. 지금 세월이 하수상하니.. 이순신의 꿈을 떠올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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