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열 증평군수
[투데이포럼]

우리말에 '총대를 메다'는 말이 있다. 정확한 어원은 알 수 없지만 총을 들겠다는 뜻이니 군대에서 나온 말로 보인다. 전쟁터에서 누구도 나서서 싸우려고 하지 않을 때 먼저 총을 멘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총대를 메다'의 사전적 의미는 '아무도 나서서 맡기를 꺼리는 공동의 일을 대표로 맡다'라는 뜻이 되었다.

비슷한 의미의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가 있다. 홍만종이 ‘순오지’에서 오래전부터 전승돼 온 구전설화를 '묘항현령(猫項懸鈴)'이라는 제목으로 실었다. 쥐가 고양이에게 자주 잡히자, 견디다 못한 쥐들이 모여 고양이가 오는 것을 미리 알아내는 방법에 대해 논의했다. 그때 조그만 생쥐 한 마리가 좋은 생각이 있다며 나섰다. 묘안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 놓으면 고양이가 움직일 때마다 방울 소리가 날 것이므로, 미리 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모두 좋은 생각이라고 감탄하고 기뻐했다. 그때 구석에 앉아 있던 늙은 쥐가 "누가 고양이에게 가서 목에다 방울을 달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나 방울을 달겠다고 나서는 쥐는 없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때로는 총대를 메고, 때로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프랑스 역사상 치세 기간이 가장 길고, 유명했던 국왕이 루이 14세이다. 말년에 72년 동안 절대 권력을 휘두른 자신의 행적에 대해 자각과 후회를 했지만, 전성기에는 '태양왕'이라고 극찬 받았던 왕이다.

이런 루이 14세 뒤에는 어머니 안 도트리슈가 있었다. 그녀는 루이 14세의 남동생 필리프 왕자에게 평생 여장(女裝)을 하도록 강요했다. 필리프 왕자가 루이 14세에게 역심을 품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여자처럼 키웠던 것이다. 흔히 조선시대 가장 위대했던 왕으로 세종대왕을 꼽는다. 한글창제를 비롯해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세종대왕을 만든 것은 스스로 악역을 자처했던 그의 아버지 태종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버지 태종은 세종을 위해 정적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사전에 모두 제거했다. 2차에 걸친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정도전, 남은과 이복동생은 물론 네 명의 처남, 그리고 심지어는 상왕으로 물러나 있는 동안에는 자신의 사돈인 심온까지 제거했다. 아들 필리프를 평생 여장으로 살게 했던 루이 14세의 어머니 안 도트리슈인들 어머니로서 왜 아픔이 없었겠는가? 자신의 동생까지 제거했던 태종 또한 왜 심적 갈등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안 도트리슈의 '총대 메기'가 있었기에 태양왕 루이 14세가 있을 수 있었고, 태종의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가 있었기에 세종이 있을 수 있었다.

지역과 조직 또한 마찬가지이다. 한때 다면평가가 유행처럼 지나갔던 적이 있다. 다면평가 제도가 오래가지 못했던 것은 상하 모두가 좋은 말만 하는 인기투표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요즘 점점 후배들에게 다끔한 충고를 하는 선배들이 없어진다. 그냥 좋은 게 좋다는 식의 행태가 만연해 가고 있다. 그야말로 총대 메는 사람,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에 나서는 사람 바로 악역을 자처하는 사람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총대 메는 악역들을 응원해 주자. 때로는 무모함으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 위해 나서는 돈키호테 같은 사람들을 성원해 주자. 조직과 지역 발전! 때로는 총대 메는 사람,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에 나선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