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산 대전유성온천역장
[시론]

우리나라에서 ‘법치주의’는 일반 국민의 준법정신을 강조하는 용어로 자주 언급된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종종 TV에서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라며 ‘법질서 위반행위에 대해 엄단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시국 관련 집회나 시위 또는 파업들이 자주 ‘법질서 파괴’행위로 지목돼 탄압을 받기도 했다.

최근 온 국민의 분노를 사는 대통령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사건을 보면 과연 권력을 가진 이에게 법이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언론보도와 검찰의 설명대로라면 대통령 연설문은 물론 국무회의 내용과 고위직 인사자료가 사전에 자격도 없는 개인에게 넘겨져 검토와 수정을 받았다.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청와대 수석은 재벌들에게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에 필요한 돈을 내도록 압력을 가해 800여억원을 모았다. 국내 최고의 기업은 비선실세 가족 사업과 운동지원을 위해 수 백억원의 뒷돈을 별도로 제공했다.

대학은 부정입학과 부당한 학점관리로 특정인에게 특혜를 줬다. 청와대 참모와 장·차관, 여당 국회의원은 비선실세를 비호하거나 그 지시에 따랐다. 국민 세금은 합법을 가장한 이권사업에 투입돼 개인의 돈주머니를 불렸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가장 먼저 챙겨야할 의무를 지닌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초기 7시간 동안의 행적이 의혹투성이다. 법조인 출신 전임 대통령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은 국회의 국정조사특위 위증의혹과 출석기피로 법질서를 어지럽혔다.

촛불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면서도 대통령은 검찰과 특검 수사를 거부하고, 국회의 탄핵안을 단 한 줄도 인정하지 않았다. 본래 법치주의는 권력자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나라를 운영하고 통치하라는 의미다.

과거 영국에서 절대군주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군주가 자의로 통치하는 것을 막고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에서 제정된 법률에 의해서만 통치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을 거쳐 법치주의는 단순히 국가 권력을 형식적인 법률에 구속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할 의무를 지는 것으로 강화됐다. 또 모든 법률은 각 나라의 헌법 가치를 실현할 때에만 법률로서 효력을 갖는 것으로 의미가 확대됐다. 우리 헌법의 가치는 국민의 기본적인 인권 보장, 권력분립의 원칙, 위헌법령 심사, 국가행위에 의한 권리침해의 구제, 죄형법정주의 원칙으로 실현된다. 법치주의와 더불어 현대 민주주의는 국가와 국민이라는 두 개의 바퀴로 굴러가는 수레와 같다. 헌법과 대의정치를 통해 이뤄지는 ‘제도 민주주의’와 투표권, 집회·시위·결사·표현의 자유를 통해 시민들이 직접 나서는 ‘참여 민주주의’가 균형을 맞춰 온전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운영된다.

우리는 이미 직접 참여 민주주의를 경험했다. 1960년 4·19혁명, 1980년 5월항쟁, 1987년 6월항쟁,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가 바로 그것이다. 현재의 '시민촛불혁명'은 그 맥을 잇는다. 우리는 그 미래를 알 수 없는 현재 진행형인 혁명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있다. 법치를 거부한 권력과 구시대를 몰아내고 새 시대를 여는 위대한 역사의 촛불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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