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한반도는 고려시대까지 해상왕국이었다. 삼면(三面)의 바닷길은 교류와 소통의 통로였다. 하지만 조선은 명나라 해금(海禁)정책을 추종해 적극적인 '공도(空島)'정책을 폈다. 섬을 비운 것이다. 수백 년 동안 살던 섬의 숨골을 끊으니 섬은 죽었다. 육지와 단절됐다. 섬과 바다는 점차 잊혀지고 철저하게 버려졌다. 섬은 유배지, 금단의 땅으로 변했다. 왕조가 섬을 버린 것은, 결국 백성을 버린 것이었다. 육지 중심의 편협한 틀에 갇혀 백성을 버린 것이다. 섬이 섬으로써, 뭍과 연결되기까지는 다시 수백 년이 걸렸다.

▶폭풍은 한낱 바람 한 점으로부터 출발한다. 처음엔 새들의 날갯짓에 미풍을 불어넣는 수준이지만, 바람이 뭉치면서 폭풍이 된다. 선장은 바람의 냄새를 알아야한다. 바람의 파고를 알아야한다. 바다를 이해하지 못한 채 키(方向舵)를 잡으면 배는 뒤집히거나, 바다의 부장품이 되고야만다. 그래서 선장의 촉수 그 자체가 존재감이다. 고립무원의 망망대해에서 살아남는 길은 선장을 필두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길밖엔 없다. 배가 가라앉을 경우 선장은 주검이 되더라도 침몰하는 배와 마지막을 함께 한다. 그게 도리다.

▶대한민국이 표류하고 있다. 선장이 배를 버렸다. 선원도 버렸다. 자기 밑에서 대신 키를 잡던 조타수만 살렸다. 선원들을 외딴 사지에 몰아넣고 제 살 궁리만 하고 있다. 빠져죽든, 굶어죽든 '배' 째라는 식이다. 정박지도 없다. 난파선(難破船)이다. 수많은 사람이 물에서 허우적거리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그저 공과(功過)만 따지느라 하세월이다. 어디로 가야할지, 어디로 가야 맞는지 알 도리가 없다. 물론 정치권에도 선장은 없다. '폐족' 여당은 내홍과 분파로 풍비박산의 기로에 서있다. 광장의 촛불에 슬쩍 무임승차한 야당도 마찬가지다. 이들 또한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지리멸렬이다. 버릴 사람과 버려질 사람 사이에서 육두문자가 난무한다. 누구 하나 대한민국號의 안녕을 묻지 않는다. 떠밀려가든, 떠내려 오든 격랑의 파도를 오히려 즐길 뿐이다.

▶'망한 나라 위에 멍한 군주가 있고, 멍한 군주 밑에 간신이 설친다'는 말이 있다. 만고의 진리다. 멍한 리더, 소신 없는 간신·관료, 호가호위하는 비선실세, 측근 내시들이 있으니 야합의 세상이다. 농단을 일벌백계한다면서 농단 당하고 있다. 광장은 여전히 촛불이 드리운다. 밀실은 여전히 촛농을 우롱한다. 분노의 임계점을 넘어섰다. 이제 선원들이 선장을 버릴 차례다. 당한 것도 억울한데, 사과 받지 못하니 더 억울한 것이다. 어느 누구 하나 마음에 차는 놈이 없다. 아, 이민 가고 싶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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