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귀동 한전원자력연료㈜ 경영관리본부장
[투데이춘추]

요즈음 영화관에서는 원전 사고를 소재로 한 영화가 상영 중이다. 영화는 부실한 원전 유지보수에 이어 관계자의 안일한 대응, 결정 지연 등 다양한 문제가 복합적으로 빚어낸 원전 폭발, 그리고 이에 맞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 영화의 제목은 ‘판도라’다.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스가 제우스의 명을 받들어 흙을 빚어 만든 판도라, 그녀는 호기심을 못 이겨 해악으로 가득한 상자를 열어 인간 세상에 불행을 퍼뜨린 장본인이다. 신화에서 그녀는 물론, 그녀가 지닌 상자는 결코 받아서도, 열어서도 안 될 선물로 묘사된다. 영화 속에서의 원자력 에너지는 열어서는 안 될 ‘판도라의 상자’로 여기게 될 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필자는 전력산업계에서, 그리고 원자력 산업계에서 30여 년간 종사하며 원자력이 경제와 생활에 얼마나 기여해 왔는지를 잘 살펴봐 왔다. 1978년 고리 1호기 가동부터 지난 40여 년간 원전은 안전하고 경제적인, 고품질의 전력을 생산해 국가 경제에 보탬이 돼 왔으며, 처음엔 외국의 기술에 의존했지만 지금은 독자기술로 원전을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전 세계적으로도 원자력 에너지는 파리기후협정을 전후해 재조명되고 있다. 이처럼 경제적이고, 깨끗한 에너지원을 찾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다소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우리 원자력이 나아갈 시장은 무궁무진하다.

더욱이 부존자원이 절대 부족하고 국토가 작은 우리나라에서는, 원자력은 영화의 제목에도 불구하고 판도라의 상자가 아닌,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프로메테우스의 불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국민도 원전과 원자력 에너지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지난 8월에 실시된 한 조사에서는 원전과 원자력 에너지의 필요성, 효용성에는 많은 응답자가 공감했지만 수용성에서는 낮은 수치를 보였다. 필요성과는 별도로 안전성에 대한 우려의 표시라고 본다.

밤낮없이 열성을 다해 일하고 있는 원자력 산업 종사자들에겐 서운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으나, 이는 어쩌면 원자력 산업 종사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원자력 발전소에는 수많은 안전장치들이 운영되고 있다. 안전을 위해 각계각층의 종사자들과 관계자들이 노력하고 있고, 법과 규정도 꼼꼼히 갖춰져 있으며, 후쿠시마 이후엔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조치가 추가로 이뤄졌다. 하지만 진정한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한 발 더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국민에게 안전을 넘어 안심을 주는 것, 그것은 바로 적극적인 소통, 그리고 투명한 정보공개와 의사결정이다. 지역사회와 국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40여년이란 긴 시간을 가지고 풀어온 핀란드 방폐장의 사례처럼 무엇이든 투명하게 공개해 한 걸음씩, 그러나 뒷걸음치지 않고 나아갈 필요도 있다. 서로 소통하고 이해한다면 다시 국민의 믿음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소통과 신뢰는, 영화 속 판도라의 상자가 단지 상상속의 존재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줄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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