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석 충북도교육청 장학사
[시론]

촛불은 순수한 자기 희생으로 세상을 밝히는 빛이다. 광장은 온갖 주장이 분출하고 서로 소통하는 뜨거움의 장소이다. 그런 의미에서 촛불광장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거대한 함성으로 어우러진 민주주의의 공간이다.

온나라 국민이 겪고 있는 최근의 사건들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명명되고 기록될 것인지 단언하기 어렵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될지 '박근혜대통령 탄핵사태'가 될지 '촛불시민이 이룬 11월 혁명'이 될지 미리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촛불광장의 규모와 내용, 특징과 양상은 이전과 다르며 세계적인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232만이 이룬 촛불바다의 거대한 규모에 있어서나 국가 운영 체제에 대한 일치된 분노와 함성에 있어서나 단 한 건의 폭력적 충돌이나 사고가 없는 평화시위에 있어서나 어떤 면모가 되었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이루고 남음이 있다. 한 신문은 '스마트 시민, 새로운 정치'라는 기획물을 통해 유례없는 촛불광장의 의미를 나름대로 분석하고 있다. 작은 제목들이 각별히 눈에 띈다. '깃발을 들지 마라…나는 내가 대표한다, 가르치지 마라…내가 판단한다, 대의기구는 내 말을 들어라.' 이 표현들로 보자면 정치적 주체로서 '나의 귀환'이다.

촛불시민들은 조직의 깃발 아래 자신의 의견을 감추기보다는 '장수풍뎅이연구회' '정다운 개돼지 연합' 등 자신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정치인들이 거국내각이니 질서있는 퇴진이니 오락가락할 때 각종 SNS를 통해 서로 의견을 나누며 학습하고 결정하고 행동했다. 광장에 선 시민들은 대의제 아래 유보됐던 자신의 의견을 외치며 외려 정치인들이 자신들을 좇아야 한다고 외쳤다. 자신의 뜻을 대신한다고 믿었던 정치인이나 조직을 거부하고 남녀노소, 지역과 계층을 불문하고 참여한 촛불광장에서 나라의 대개혁을 주장했고 일정하게 성과를 이뤄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촛불광장은 '국민의 귀환'을 보여주기도 했다.

투표소 문을 나서는 순간 국민의 주권행사는 끝난다. 다음 선거가 돌아올 때까지는. 이런 유의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싶게 정권을 잡은 이들이 전횡을 일삼는 경우도 있었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보도만 쏟아내는 언론 앞에서, 이렇게 저렇게 이뤄지는 정책 홍보의 대상으로써 국민은 겨우 존재했다 싶기도 했다.

그러나 촛불광장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을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촛불광장이 정치적 주체로써 '나의 귀환'이든 주권자로서 '국민의 귀환'이든 목하 진행되고 있는 역사적 사건의 전체 의미일 수도 없고 유일하게 올바른 의미일 수도 없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질문과 토론은 역사의 더 큰 의미를 살려내고 미래로 나아가는 첫걸음일 것이다.

촛불광장에서 어떤 이는 분노를 읽고 어떤 이는 희망을 읽을 것이다. 어떤 이는 과거를 볼 것이고 어떤 이는 미래를 볼 것이다. 어떤 이는 나를 노래할 것이고 어떤 이는 우리를 노래할 것이다. 어떤 이는 고통을 느낄 것이고 어떤 이는 기쁨을 느낄 것이다. 살아있는 역사교과서인 촛불광장의 의미에 대해 학교현장에서 학생들과 배움의 장을 펼쳐보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 있다. 1979년 독일에서 만들어졌다는 보이텔스바흐 협약을 참고로 해서 말이다. 강제적인 교화나 주입식 교육의 금지, 실제와 같은 논쟁적 상황 유지, 학생 자신의 정치적 상황과 이해관계를 고려한 실천능력 강화가 이 협약의 세가지 원칙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정치교육은 아직도 할 수도 안할 수도 없는 뜨거운 감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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