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근 전 충청투데이 독자자문위원
[특별기고]

영화 ‘암살’은 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아닌, 일제 앞잡이들이 우리나라 건국의 주역이 되는 과정을 꼬집고 있다. 친일파들은 일제 하에서 관료의 실무능력과 축적된 재산, 뛰어난 생존본능을 두루 갖췄다. 미 군정의 하위 파트너 역할을 충실히 하다 건국과 동시에 주요 국가기관, 산업기반을 장악했다. 일제의 앞잡이였던 친일파들이 대한민국에서 되레 주인이 된 것이다. 해방된 나라에서 이들에 대한 사법적 단죄가 없었다. 부당하게 축적한 재산 환수조치도 없었다. 오히려 이승만 정권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해체과정을 통해 친일파들이 득세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매국노 이완용 후손이 국가에 낸 재산반환 청구소송에 후손의 손을 들어준 나라, 일왕으로부터 일등공신 훈장을 받은 이완용의 조카(이병도)가 대한민국의 훈장과 5.16민족상을 받고 제7대 문교부장관(1960년)을 해먹는 나라, 서울 한복판에서 열리는 일왕 생일파티에 지금도 유명 정·재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축하해주는 나라가 됐다.

충북도에서도 대표적인 친일파였던 민영은이 친일행위의 대가로 챙겼던 청주시 도심의 '알짜배기' 땅, 지금은 도로가 된 그 땅을 내놓으라며 몇 해 전 후손 5명이 청주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일이 있었다. 1심에서 후손들이 승소했을 정도로 4년 6개월간 힘겨운 법정싸움 끝에 결국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씁쓸한 뒷맛이 가시지 않고 있다.

친일파 후손들은 물려받은 경제적 부(富)를 기반으로 일제 강점기 그들의 할아버지보다 비교할 수 없을 신분과 지위를 누리고 있다. 아직도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 특히 정치인들 중 일제 앞잡이의 후손이 많다고 한다. 16대, 17대 국회에서도 ‘친일파재산환수법’을 통과시키려 했으나 친일파 후손들이 장악한 국회의원들의 반대로 매번 무산될 정도로 말이다. 프랑스의 경우 2차대전 직후 나치에 부역한 자들에 대한 숙청작업을 했다. 심지어 전범국인 독일에서도 히틀러 옹호세력이 공직에 진출하는 것을 원천 차단하는 법과 제도를 갖고 있다.

지금 온 나라가 난리법석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에서 비롯된 지금의 정국을 보면서 새삼스레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지금 국정사태와 관련된 핵심인사들이 공교롭게도 친일파의 후손들이기 때문이다. 최순실의 아버지인 최태민은 일제 순사를 했던 사람이다. 유신 의식화의 선봉 역할을 했던 최순실은 지금 드러난 재산만도 4000여억 원에 이른다고 하는데 정당한 노력으로 번 돈은 아닐 테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도 일본 육사를 졸업한 일본군 장교출신이다. 그 외에도 내로라하는 많은 정계, 재계, 언론계 인사들이 친일파 후손라고 한다. 어쨌든 친일파 인사들은 아직도 대를 이어 권력과 부의 핵심층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온갖 불의의 온상이 되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의 '최순실 국정농단'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예정된 비극이 아닌가 싶다. 해방 7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 불의를 청산하지 못하다 보니 친일파 후손들이 국정을 농단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음을 보아왔다. 친일청산 실패는 유신독재 청산 실패로 이어져 오늘의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역사의 고름을 짜내야 한다. 지금의 시대적 죄악을 이번에 청산하지 못하면 우리 후손들이 살아 갈 미래도 오늘과 똑같은 죄악의 시대가 될 수밖에 없다. '청산되지 않는 과거는 미래'라는 말이 무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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