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부터 내년 1월 8일까지 학고재 갤러리서 전시

켜켜이 쌓아올린 풍경의 깊이…허수영 개인전

9일부터 내년 1월 8일까지 학고재 갤러리서 전시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학고재 갤러리 지하 1층 전시장에선 열대 우림이 펼쳐진다. 3면에 걸린 대형 캔버스는 수풀이 우거진 정글 같은 공간을 담고 있다. 2차원 평면 그림인데 그림을 응시하고 있자면 3D 영화를 보는 듯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9일부터 내년 1월 8일까지 서울 종로구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리는 허수영(32) 작가의 개인전은 회화의 깊이를 볼 수 있는 전시다.

허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켜켜이 쌓아올린 시간의 흔적을 담은 풍경화 16점을 선보인다.

지난 2014년 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조사 여행 지원자로 선정돼 북미와 유럽, 아프리카 등을 여행한 작가가 여행 도중 포착한 풍경이 주요 소재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일반적인 풍경화와는 상당히 다르다.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는데도 추상화처럼 보인다. 신비롭고 환상적인 느낌은 덤이다.

이는 작가의 독특한 작업 방식에 기인한다.

6일 갤러리에서 만난 허 작가는 "멀리 있는 풍경에서 시작해 가까이 있는 풍경까지 순차적으로 그려나가며 화면을 완성한다"고 작업 방식을 설명했다.

허 작가의 작업은 여러 차례 덧칠을 통해 완성된다.

원근법을 적용해서 한 화면에 풍경을 그려 넣는 대신 허 작가는 원경만으로 화면을 완성한 뒤 다시 그 위에 근경의 대상을 동일한 강도로 그려 덧입힌다.

그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풍경의 변화도 같은 방식으로 담아낸다. 예컨대 봄에는 앙상한 가지 위에 피어나는 싹을 그리고, 여름이 되면 같은 가지 위에 무성한 푸른 잎을 다시 그려 넣는다. 가을에는 푸른 잎을 울긋불긋하게 덧칠하고, 겨울에는 그 위로 눈을 쌓는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중첩된 색채감과 두꺼운 질감으로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낸다.

지하 2층에 거진 500호가 넘는 대작 '숲10'이 대표적이다.

숲 속 풍경을 더는 그 위에 그림을 그릴 수 없을 때까지 덧칠해 완성한 이 작품은 자연의 재현이지만 풍경이 아닌 추상에 가깝다.

이렇게 작업 과정이 복잡하다 보니 온종일 작업에 매진하기로 유명한 허 작가도 3년간 겨우 16점을 완성해냈다.

허 작가는 "뒤에 있는 풍경을 '있는 척'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있게끔 하고 싶었다"고 이런 힘겨운 작업을 고수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자신을 'IMF 외환위기 세대'라고 밝힌 그는 "힘들게 그리는 게 힘든 시대를 표현하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luc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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