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관 대전시 환경녹지국장
[시선]

우리는 매일 아침 깨끗한 수세식 화장실에서 세면을 하고 볼일을 보면서 상쾌한 하루를 시작한다. 이 평범한 삶의 패턴이 당연하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불과 30년 전까지만해도 ‘뒷간’으로 불린 재래식 화장실이 일상이었다. 우리나라의 화장실 문화는 최근까지 국가적으로 분뇨를 비료로 농업에 이용하는 것을 권장하였기에 수세식 화장실 보급이 서양보다 늦었다.

반면에 서양의 화장실 역사는 우리와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진행됐다. 중세시대 영국 런던은 산업화로 도시에 사람이 몰리자 복층(復層) 건물들이 많이 생겨났다. 당시는 하수관이 설치돼지 않아 2층 이상에 사는 사람들은 의자형 요강(크로스 스토루)을 가지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대소변을 길거리에 날라다 버렸고, 그마저 불편해진 사람들은 창밖으로 오물을 투척하기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거리는 분뇨로 뒤범벅이 되고 영국 왕실은 법률로써 창밖으로 분뇨투척 행위를 금지시켰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런 현상은 중세 유럽 도시전역에 퍼져 사람들의 복식(服飾)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오늘날 매력적인 여자의 필수품인 굽이 높은 하이힐은 길거리의 분뇨를 밟지 않기 위해 창안되었고, 망토나 모자 역시 창밖으로 불시에 투척되는 분뇨로부터 머리와 의복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이후 1596년, 존 해링턴이 최초로 수세식 변기를 발명했고, 1775년 커밍스에 의해 물이 뚜껑 역할을 해 냄새가 나지 않도록 개량한 ‘밸브 클로셋’이 만들어졌으나 근본적인 하수도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기에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다. 결국 비위생적 분뇨처리는 17세기 유럽 전역의 페스트 창궐과 18세기 영국의 콜레라를 유행시켰다. 1860년 뒤늦게서야 영국은 대안으로 런던의 하수도 체계를 대폭 정비하게 되는데, 이것이 근대적 하수도 건설의 시초가 됐다. 그에 힘입어 1889년 보스텔에 의해 오늘날의 수세식 변기와 거의 유사한 ‘워시 다운형 변기’가 등장하게 됐다.

오늘날의 하수도 건설을 기반으로 한 수세식 화장실의 탄생은 그처럼 중세시대 수만 명의 생명을 희생시킨 끝에 비로소 탄생한 새로운 혁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18년 서울시내 청계천 준설과 배수가 불량한 17개 지선 개수사업이 근대적 하수도 정비사업의 시초다. 이후 1966년 하수도법이 제정됐고, 1980년대 8%의 보급률에 머물던 하수도는 그 후 경제성장과 맞물려 보급 속도를 꾸준히 높여, 현재는 92%가 훌쩍 넘는 보급률을 보이고 있다.

대전시의 경우 2016년 현재 인구대비 97%의 하수도 보급률을 보이며, 1일 60만t의 하수를 안정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또한 녹록치 않은 시(市) 재정여건에도 불구하고 매년 하수관 설치, 노후관로 정비, 하수처리장 운영 등에 1000억 원의 예산을 투자하고 있다. 시는 하수도정비 기본계획 수립과 하수도 정밀조사를 통해 2021년까지 1137억원을 투자해 노후 하수관 긴급보수와 하수관로 분류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혈관이 깨끗해야 혈액의 찌꺼기와 노폐물이 제대로 걸러질 수 있는 것처럼 선제적인 하수도 정비를 통한 오·폐수의 정화작용을 통해야 우리의 강과 바다가 제대로 숨을 쉴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이 같은 하수도 정책은 안정적 하수처리를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일상 속에서 생활하수를 줄이고자 하는 시민들의 마음가짐이다. 물 환경 보전 문제가 인류 생존을 위한 공통의 문제임을 인식하고, 맑고 깨끗한 수자원 보전에 우리 모두가 힘써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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