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엔디컷 우송대 총장
[화요글밭]

올해의 마지막 달이다. 학교 학생들은 기말고사 준비로 종종걸음으로 오가기 바쁘지만 필자의 나이가되면 길에 융단처럼 깔려있던 낙엽들이 바삭하게 말라서 바람에 날리고 자동차 바퀴에 부서지는 모습이 평범하게 와 닿지는 않는다. 하루하루가 소중해지는 깨달음이 오는 순간이다.

얼마 전 일본 동경을 방문했다. 동경에 있는 간다외국어대학과 메이지대학은 필자가 재직 중인 대학교와 활발한 교육협력을 하고 있는 대학이다. 우리대학의 학부생, 대학원생들에게 교환학생 프로그램과 복수학위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필자가 어린 시절에 1년간 아버지를 따라 영국에 유학을 갔던 경험은 인생을 바꿀 만큼 강력한 것이었기 때문에 보다 많은 학생들에게 해외유학을 경험하게 하려는 것은 필자의 교육철학 중 하나이다. 간다외국어대학에는 오랜 친구가 교수로 있는데 마침 그 친구의 수업을 참관할 수 있었다. 국제커뮤니케이션과목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과 연설을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그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일본학생 외에도 한국과 중국의 유학생들도 소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 일본제국의 중국침략, 진주만 공격, 히로시마 핵폭발과 생존자들의 인터뷰로 구성된 영상을 시청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에 방문했을 때 했던 연설을 함께 보았다.

'71년 전 하늘에서 죽음이 내려왔다'로 시작된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을 유심히 살펴본 학생들은 연설에서 무시무시한 병기를 사용했던 것에 대한 유감이 아니라 핵무기로 인해 죽어갔던 무고한 민간인들에 대한 사과로 인식했다. 출신국가가 다양했기 때문인지 몇몇 학생들은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히로시마뿐만 아니라 일본제국의 전쟁강행으로 인해 신음한 한국, 중국, 동남아, 미국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은 '사과'보다는 핵무기감축 '핵 없는 세상'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연설이었다고 제법 날카로운 분석을 하기도 했다.

'원자폭탄' 폭발 이후, 많은 나라들이 적에서 동맹관계, 더 나아가 친구관계가 됐으며 유럽도 전쟁 대신 경제와 민주주의 동맹 연합 체제를 구축했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처럼 전쟁은 한 나라만의 피해만이 아닌 모든 나라의 피해라는 인식을 학생들과 함께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학생들의 토론이 끝난 후, 친구는 필자에게 핵무기 감축을 위한 보완 설명을 요청했다. 1990년부터 필자가 몸담았던 '동북아비핵화 운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반도 비적대·비핵화 운동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지만 아쉽게도 좋은 기회들을 놓쳤으며, 그것은 앞으로 여러분들의 숙제가 됐다는 말로 강의를 마무리 지었다.

필자가 만난 한국인들 대다수는 자신들의 역사와 근면성, 근성, 경제성장 등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요즘 한국사회는 힘들게 이뤄왔던 값진 것이 흔들리는 위기감이 느껴진다. 다음의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연설의 한 대목처럼 참기 어려운 위기는 참 깨달음의 시작이 된다는 것. 그런 믿음이 있다면 한국도 지금의 고통을 현명하게 이겨내고 고귀한 미래를 선택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히로시마가 주는 가르침들이 참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전 세계가 영원히 바뀌었습니다. 오늘날, 이 도시의 어린이들은 평화롭게 일상을 향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고귀합니다. 모든 어린이들에게 이것은 동일합니다. 히로시마가 원폭 전쟁의 시작이 아니라 인류의 참 깨달음의 시작이 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선택할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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