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며 자신의 사퇴 문제를 정치권에 떠넘겼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일 2차 담화 이후 24일 만에 내놓은 대국민담화에서 “여야 정치권이 논의해 국정 혼란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주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일단 담화 내용이 담대함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이를 실현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작지 않다. 박 대통령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나오는 이유다.

박 대통령의 담화문은 현재의 시국인식과 더불어 자신의 거취 문제를 풀어가는 방안 두 가지로 돼 있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여전히 안이한 인식을 보여주었다. 박 대통령은 "저의 불찰로 큰 심려를 끼쳐드린 점 다시 한번 깊이 사죄드린다"고 말하면서도 사익을 추구하거나 작은 사심도 품지 않았다는 점을 다시 강조했다. 검찰 수사결과 드러난 '최순실 게이트'의 공범 내지는 피의자로서의 자신의 혐의에 대해 적극 해명하고 나섰다. 대통령 자신은 큰 잘못이 없다는 투다. 검찰 조사에 불응해온 입장과 다르지 않다.

대통령의 임기 단축 및 진퇴를 싸고도 책임성 차원에서 모호한 어법으로 혼선을 주고 있다. 대통령의 법적 도덕적 정치적 책임이 작지 않은데도 자신의 진퇴 문제의 해법을 국회에 떠넘긴 것은 절묘한 한수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무책임한 처사다. '조건 없는 즉각 퇴진'보다는 자신의 거취를 국회에 넘긴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새누리당 친박 지도부가 버티고 있는 이상 여야 합의를 이끌어낼 것인지는 미지수다.

임기 단축의 방식을 국회에서 알아서 하라는 것은 두 가지 함의를 내포한다. 하나는 개헌을 고리로 이를 풀거나 아니면 탄핵 소추에 들어가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짧은 기간 내에 임기 단축을 위한 개헌을 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를 모를 리가 없다. 정파에 따라 그리고 잠재적 대선주자 간에도 개헌의 셈법이 엇갈린다. 야당에서 탄핵 지연의 꼼수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탄핵정국을 개헌정국으로 돌리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탄핵으로만 풀어갈 것인가는 결국 국회의 몫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언제까지 일자를 특정하고 퇴진할 것으로 기대해온 대다수 민심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른바 '질서 있는 퇴진'이 됐건 '명예로운 퇴진'이 됐건 모두 대통령이 2선으로 완전 퇴진하려면 국무총리에 전권을 이양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명시적인 해법도 없다. 국회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박 대통령은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고 말했다. 국정 붕괴 상태에 직면한 이 엄중한 국면을 제대로 판단해야 하는 순간이다. 여권은 친박-비박간의 입장이 각기 다르고 야당은 탄핵, 특검, 국정조사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한다. 촛불 민심은 즉각 퇴진이지만 정치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으니 걱정이 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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