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석 대전경찰청 정보과장
[화요글밭]

한해의 끝자락을 매단 달력 한 장이 겨울바람에 나부낀다. 연일 촛불을 마주하는 경찰은 고단하다.

늦은 밤, 시민의 평온한 밤을 지키는 24시간 불침번, 대전경찰청사 1층에 있는 과학수사 현장 감식실(CSI)을 방문했다. 이곳은 사이버공간에서의 증거 수집 장비뿐 아니라 지문 채취 분석 장비와 사진 분석과 혈흔채취 등 첨단 수사 장비들이 구축돼 있다. 과학수사는 과학적 지식과 기구·시설을 이용하는 합리적인 수사 기법이다. 1948년 11월 4일 ‘감식과’로 시작된 날을 ‘과학 수사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인권과 증거 중심, 공판주의가 강조 되며 수사와 과학의 융합인 과학수사가 빛을 발한다. 한국 과학수사 기법인 지문과 유전자 신원확인 기법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최근 미세증거와 혈흔형태 분석 등 전문 기법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미세증거 분석은 섬유, 페인트, 유리, 먼지 등 현장에 남아있는 작은 증거를 통해 범죄의 단서를 잡아내는 기법이다. 혈흔형태 분석은 핏방울 위치, 크기와 모양 등을 관찰해 사건 발생 당시 일어났던 일들을 시간 순서대로 재구성하는 기법이다. 또 장문과 체취 증거분석도 활용하고 사이버 범죄수사 기법도 놀랍다. 1980년대 경기 화성 지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연쇄 살인을 소재로 했던 ‘살인의 추억’이란 영화에서 수사관이 과학 장비 없이 뛰어 다니던 애처로웠던 시절도 있었다. 수사형사의 경험을 통한 연고선 추적이나 현장에서 느끼는 막연한 감과 잠복 수사, 홀몸으로 밤을 새워 뛰어 다니는 수사 방법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과학수사기법은 이제 해외에 전수하는 한류치안의 으뜸에 있다. 400만대 이상의 CCTV와 차량의 블랙박스도 많이 활용된다. 움직임과 화질의 단점을 보완하는 용의자 신원확인 3D 입체 시스템도 접목 중이다. 지문검색시스템(AFIS)이 DB화 돼 외국인과 아동의 신원확인에도 활용될 것이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모든 현장에는 실체적 진실이 남아 있게 된다. 현장에 답이 있다. 그래서 범죄 현장은 범인을 찾는 보물창고다. 그래서 최초 범죄현장에는 CSI(Crime Scene Investigation) 라는 로고에 과학 장비를 휴대한 대전경찰청에서 직접 운영하는 하얀색의 전문 감식 경찰이 언제 어디서든 대비하고 있다.

제 3차 산업 혁명이라는 IT(정보화)사회는 디지털 혁명의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IT 사회를 뛰어넘으며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이 디지털, 바이오, 오프라인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기술 융합 대변혁의 물결로 다가 오고 있다.

우리 앞에 다가온 AI(인공지능), 무인자동차, 가상현실, 로봇, 드론, 3D 프린팅 등 최첨단의 과학문명이 앞에 있다. 세상 모든 것들이 자동화, 로봇화, 가상현실, 인공지능의 길을 걷게 된다고 한다. 4차 산업혁명은 우리 생활을 윤택하고 하고 삶의 질을 높이겠지만 양극화와 소외 등 병리 현상을 양산하며 갈등과 범죄를 낳을 것이다. 더불어 범죄를 제압하는 과학수사 기법에도 더욱 촘촘한 디지털 기술융합이 가속화 될 것이다. 누구나 강력 범죄가 빈발하고 밤거리가 불안한 도시에는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범죄 수사 기법이 완벽할 수록 범의(犯意)를 막고 범죄는 줄어들게 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 거짓이나 범죄는 숨겨 질 수 없다. 완전 범죄는 불가능하고, 영구 미제 사건은 있을 수 없다는 치안 인프라가 중요하다. 미래를 바꿀 4차 산업혁명 사회에도 과학수사가 고도화된 안전한 치안 공동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과학 치안 인프라는 비용이 아니라 도래하는 4차 산업혁명에서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투자여야 한다. 인간애를 잃지 않는 따뜻한 법치주의가 미래사회에서 소외될 수 있는 인간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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