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석 을지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시선]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수많은 질문이 있었다. 데카르트는 인간이 생각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점에서 다른 동물과 구별되며,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다. 사람은 오감을 느낄 때마다 생각(Thought)을 생산해내는데, 놀랍게도 하루에 약 7만여 가지의 생각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사업이 망할 것 같다’, ‘남편이 나를 함부로 대한다’ 등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을 더 많이 한다는 것이 문제다.

긍정적 생각은 판단력을 관장하는 대뇌피질의 기능을 활성화 시킨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긍정적인 생각보다 부정적인 생각에 훨씬 더 반응을 보인다. 부정적인 생각이 반복되면 나쁜 기억을 저장하는 뇌신경 구조인 편도체가 반응하며 흥분하게 된다. 또 자율신경은 항진되고 스트레스 호르몬은 증폭되어 감정은 폭발하며, 이성적 생각을 만드는 대외피질은 마비가 된다. 이정도가 되면 생각하고 있는 내가 ‘정말 나인가’를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몇 년 전 자식이 선거에 출마한 아버지를 공개 비판한 기사가 있었다. 인생을 살아보면 세상에 이해하지 못할 것 없고 언젠가는 부모를 이해하게 될 텐데,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한 치도 머릿속을 떠나지 못한 것이다. 결국 자식의 편도체가 반응했고 생각에 생각이 더해지면서 감정이 폭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다수의 군중이 긍정적 생각을 피력하고 협력해 얻어진 결과를 집단지성이라고 한다. 하지만 개인뿐만 아니라 군중도 부정적 생각에 휩쓸리면 편도체가 집단으로 반응하고 집단지성은 마비된다.

미국의 45대 대통령 선거 여론조사에서 언론은 힐러리의 당선을 90% 이상 예측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됐다. 미국 언론은 트럼프 자질론은 내세워 미친놈이라고 물고 늘어지는 위선적 언어체계를 뿜어냈다. 이런 부정적 언어체계라면 집단지성은 자라지 못하고 마녀사냥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세계적으로 사회경제적 조건이 혁명적으로 바뀌고 있는 도도한 흐름, 기존 정치권에 염증을 느낀 민심을 꿰뚫어 보지 못한 것이다. 미국언론의 위선적 언어체계가 스스로의 편도체를 흥분시켜 언론의 본분을 상실한 것이다.

정보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생각은 매우 취약하다. 각종 편견과 오류들로 가득 차 있고 우리의 편도체는 아픈 기억을 잊지 않고 있다. 위선적 언어체계가 난무할 때 편도체는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며 생각의 오류를 만들어내고, 타인의 욕망에 쉽게 휘둘린다. 이를 두고 자크 라캉은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 내가 존재한다’고 했다. 사실 생각이 사라지는 쾌감 속에서 인간은 올바른 선택을 한다. 인간에게 이런 쾌감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뇌는 체중의 2% 밖에 안 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을 때도 산소의 20%를 소비한다. 불필요한 정보를 삭제하고 경험을 정리하며, 흥분된 편도체를 가라앉히는 일명 ‘쾌감의 멍 때리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뉴턴은 사과나무 밑에서 멍하니 있다가 만유인력을 발견했고 아인슈타인도 바이올린과 보트타기를 하며 휴식을 즐겼다. 생각이 사라지는 쾌감의 순간에 새로운것을 발견한 것이다.

현대 사회는 정보과잉, 생각과잉 시대이다. 언론이든 타인이든 위선적 언어체계가 자신을 흔들 때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로 존재 한다”를 되뇌어보자. 우리에게는 생각이 없어지는 쾌감의 시간이 필요하다. 명상도 좋고, 한바탕 웃는 것도 좋다. 기도, 산책, 운동, 하늘보기 등도 있다. 방법이 뭣이 중하랴, 그 시간이 주는 소중함을 깨닫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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