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꼴을 보면 여당이든 야당이든 도긴개긴이다. 그게 그거고, 그 분이 그 분이다. 한 뼘의 양심으로 측정 불가다. 물론 멘털(Mental)의 가치로도 예측 불가다. 야당이 여당 되면, 야당 때의 혈기 방장했던 색이 없어진다. 여당이 야당 되면 갑자기 좌파 흉내를 낸다. 이 무미건조한 유체이탈은 권모술수다. 여당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정청'의 숙주(宿主)가 된다. 야당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사건건 반대만 한다. 그래서 우린 '보수'라고 쓰고 '꼴통'이라고 읽는다. 더불어 '진보'라고 쓰고 '꼴값'이라고 읽는다.

▶'보수'면 나쁘고 '진보'면 다 좋은 것인가. 반대로, 보수면 좋고 진보면 다 극렬세력인가. 마음은 '보수'이면서 겉으론 '진보'인 척 하는 군상들은 무언가. 우린 진보와 보수의 DNA를 동시에 갖고 있다. 물론 '피(血)'의 농도로써 차이는 있을 것이다. 다만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조작되고 있을 뿐이다. 이념의 심장을 관통하고 있는 건 위선이다. 흑백의 논리, 좌우의 논리, 진보·보수의 논리 저변에는 '권력욕'이 있다. 여당일 땐 야당시절을 잊고, 야당일 땐 여당시절의 무소불위를 잊는 건 망각이 아니라 망각인 척하는 정치적 치매다. ‘심각한 상황 인식’을 못하고 버티는 대통령, 벌써 대통령이 된 듯이 설쳐대는 군상들의 발광(發狂)이 꼴불견이다. 달콤한 것엔 독이 묻어있음을 모르는가.

▶야당이 여당 되면 복수하고, 여당이 야당 되면 잔뜩 벼른다. 이념에 덧씌워진 이 함량미달의 불편한 감정은 더러운 유산이다. 새로운 문법과 필터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지키려다보니 빼앗기는 것이다.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고 했지만, 모두들 폭로정국에 얹혀 제살 궁리만 하고 있다. 국민들은 정치 때문에 살지 않는다. '정치인'이 필요한 게 아니라 '정치'가 필요하다. 듣지 않고 보려고 하니, 답이 없는 것이다. 보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것이 중요하다.

▶400년 전 광해군 때 임숙영이란 선비가 있었다. 별시 문과에 응시한 임숙영은 '가장 시급한 나랏일이 무엇인가?'라는 책문(임금이 직접 내린 시험과제)을 받아들었다. 그는 고민하지 않고 답안지를 써냈다. "나라의 가장 큰 병은 정신 못 차리는 임금에게 있다." 답안지를 본 임금이 노발대발 펄쩍뛰며 임숙영을 벌하라고 하명했지만 좌의정 이항복, 권신(權臣) 임희수, 승정원은 그를 급제시켰다. "전하, 그를 벌하면 언로가 막히고, 나라가 망하는 단초가 된다"며 간언했던 것이다. 임숙영은 4개월 후 벼슬길에 올랐다. 지금 어디에 임숙영, 이항복 같은 '정치인'이 있는가. 스스로의 목을 내밀고 충언하는 '정치'가 어디 있는가. 400년 전보다도 못한 참담한 정국이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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