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연희 ETRI 지식이러닝연구실 선임연구원
[젊은 과학포럼]

2007년 아마존의 전자책 단말기 킨들(Kindle)의 등장으로 전자책이 종이책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실제로는 큰 파급효과를 일으키지 못했다. 텍스트나 이미지 등 종이책이 담고 있는 콘텐츠를 디지털로 표현하는 전자책이 종이책의 매력을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종이책이 담고 있는 콘텐츠를 디지털화했다는 것은 뜻밖에도 시각장애인에게 큰 가능성으로 다가왔다. 시각장애인들은 3개월에서 6개월의 제작기간이 걸리는 점자나 음성도서 등 별도의 대체자료로 독서를 해왔는데, 디지털화된 전자책은 비교적 적은 노력으로 접근성 콘텐츠로 변환이 가능하고, 텍스트를 음성으로 변환하는 TTS(Text-to-Speech) 기술을 적용할 수 있어 시각장애인이 바로 읽을 수(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전자책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출판사의 80%가 전자책을 제작하고 있으며, 신간이나 베스트셀러의 대부분이 전자책으로도 제공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출판되고 유통되는 전자책을 시각장애인이 읽을 수 있을까? 아쉽게도 대답은 ‘아니오(No)’이다.

일부 스마트폰을 잘 다루는 시각장애인들은 보이스 오버(VoiceOver) 등 플랫폼 자체의 접근성을 이용해 기존에 유통되는 전자책을 스크린리더로 읽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시각장애인들이 읽는 전자책은 ‘센스월드, 룩스데이지’ 등 장애인 전용 전자책 앱을 통해 제공되고 있는 것들인데, 이는 또 다른 형태의 대체자료(DAISY)로 비장애인과 동일한 수준으로 독서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전자책을 시각장애인이 볼 수 있게 하려면 어떤 조건이 선행돼야 할까? 먼저 ‘콘텐츠 접근성’이 제공돼야 한다. 텍스트 외에 도표, 이미지 등 복잡한 내용도 정확히 설명 가능한 상태가 되려면 콘텐츠 제작 단계부터 표준과 접근성 가이드라인을 따라 제작해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서비스 접근성’이 제공돼야 한다. 온라인 유통사가 웹 접근성을 준수하더라도, 시각장애인 입장에서는 비시각장애인용 웹페이지가 복잡하고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어 스크린리더만으로 이용하기는 어렵다. 마지막으로 ‘접근성 뷰어’가 제공돼야 한다. 국내 유통사별 제공되는 전용 단말기들은 TTS조차도 탑재돼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며, 전자책 리더 앱의 경우에도 모바일 접근성을 준수하지 않아 시각장애인이 이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일반 전자책에 편집자의 개입을 최소화 하면서 최대한 자동화해 시각장애인을 위한 접근성 콘텐츠로 변환할 수 있는 전자출판 기술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기존의 PDF와 같은 전자책 양식을 분석하고 유의미한 콘텐츠를 추출해, 표준화된 접근성 전자책 파일을 생성하고, 장애인 접근성 요소를 검사해 쉽게 수정할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한다면 비용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이러한 기술로 제작된 전자책을 시각장애인에게 서비스하기 위해서는 시각장애인이 대량의 전자책 데이터베이스에서 원하는 콘텐츠를 쉽게 검색하고, 다운로드 할 수 있는 기술과 다운로드 한 전자책을 볼 수 있는 접근성 전자책 뷰어 기술이 필요하다. 특히, 뷰어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시각적 기능 대신 진동이나 소리 등을 통한 상호작용이 가능해야 한다.

장애인용 전자출판 플랫폼과 서비스 플랫폼이 제공될 때 약간의 관심과 참여만 있다면 향후 출판사에서 출시되는 전자책은 비장애인과 거의 동시에 시각장애인도 읽을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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