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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에서 가장 큰 석불이 있는 금산 미륵사

충청투데이 cctoday@cctoday.co.kr 2016년 11월 15일 화요일 제11면     승인시간 : 2016년 11월 14일 17시 37분
미륵이라는 이름은 불교에서 널리 사용되는 신앙이기도 하면서 특정 대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미륵이라는 이름이 앞에 붙은 보살은 도솔천(兜率天)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상생신앙(上生信仰)과 미래에 인간세계에 태어나 중생을 교화할 미륵불의 구원을 갈망하는 하생신앙(下生信仰)이 담겨져 있다.

금산에는 1,0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다는 보석사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한적한 곳에 미륵사가 있다는 것은 우연하게 관찰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금산에서 흐르는 물은 모두 금강줄기로 이 물이 흘러흘러 아름다운 풍광의 적벽강에 이르게 된다. 그냥 기도도량일까 아니면 오래된 사찰일까. 보통 크지 않지만 불교를 표방하며 기도하고 마음의 안식을 얻는 곳을 보통 기도도량이라고 부른다. 그래도 엄연히 사찰을 의미하는 미륵사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니 사찰이 맞을 듯 하다.

조금씩 사찰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륵은 석가의 가르침을 받았던 인물로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고 도솔천에 올라갔다고 한다. 석가가 입멸한 지 56억 7,000만 년 후가 되면 모든 중생들을 구제한다는데 그 날이 언제 올지 감도 안온다. 미륵사의 앞마당은 정말 넓다. 금산은 옛날에 백제가 자리했던곳으로 미륵사 창건 연기설화에서 미륵3존이 연못 속에서 출현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 미륵사는 이곳이 아닌 익산의 미륵사이다. 미륵사에 남아 있는 건물들은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된 듯 보인다. 금산 미륵사는 임진왜란때 승병으로 처음 일어났었던 승병장 영규대사와도 관련이 깊다. 이 석조는 그냥 안쪽이 비워진 돌이 아니라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물을 담아놓는 물통이다. 길이 237cm, 너비 150cm, 두께 20cm의 규모로 원형이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다. 물이 흘러나오는 쪽인 남쪽 상당부에는 밖으로 돌출되게 낙수홈대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내부 바닥을 자세히 보면 가운데에는 물을 빼는 배수구멍이 있다. 위쪽에 올라오니 불경을 읽는 소리가 밖으로 경건하게 퍼져나오고 있었다.

금산 미륵사에서 가장 중요한 석조불두와 마애불편을 보러가는길은 잘 정비되어 있었다. 어디서 가져왔는지는 모르지만 평평한 판의 돌로 내려가기 좋게 잘만들어져 있다. 쫓아오는 모기를 휘휘 저어가면서 10분 정도를 걷자 드디어 흔적들이 나온다. 이곳의 석조불두와 마애불편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09호 지정되어 있다.

커다란 돌에 부처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형태가 완전히 복원된 것이 아니라서 항마촉지인의 형태라던지 시무외인의 수인등만 눈에 띄인다.

이곳처럼 마애불에 머리만 별도로 만들어진 사례로는 경기도 파주 용미리 마애불입상과 경주 남산 약수골 마애대불이 대표적이다. 거대한 불상의 파편들이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었다. 대형 마애불로 조성된 편단우견 항마촉지인 불좌상의 형식은 통일신라시대 후반의 불상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제작기법면에서는 고려시대의 양상이 반영된것으로 추정된다. 이곳까지 안내하신 여승이 이곳에 불상이 자리하게 된 이유부터 시작하여 전해내려오는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곳에 있는 두 불상 봉안으로 변천과 신앙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도 복원중인 상태라고 한다. (이 글은 11월 9일에 작성됐습니다-이 사업(기사)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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