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급하긴 급했는가보다. 웬만해서는 일찍 사과를 안 하는데 이번엔 '급사과'를 했다. 1차 때 사과는 100초였고, 2차 때 사과는 560초였다. 그런데 사과만 했지, 사과의 진정성은 없었다. 외로워서, 최순실과 가깝게 지냈을 뿐이라는 게 변명이었다. '노무현의 남자' 김병준을 총리로 내세우고 줄곧 야당의 길을 걸어온 'DJ계' 한광옥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발탁한 것도 정국 희석용 악수(惡手)였다. 짜장밥이 싫어 잡탕밥을 만든 꼴이다. 국민의 속을 이래저래 골고루 긁어놓고 있다. 한나라당 대변인을 지낸 전여옥의 증언이 새삼 떠오른다. "박근혜(대통령)는 심기를 거스르거나 나쁜 말을 하면 절대로 용서 않는다. 그가 용서하는 사람은 딱 한 명, 자기 자신뿐이다."
▶촛불의 강(江)은 청와대 북악산을 휘감아 돌아 전국을 적신다. 광우병 시위(2008년), 세월호 시위(2014년)보다도 뜨겁다. 그러나 뜨거울 뿐, 대통령까지 뜨겁게 하지는 못했다. 정의로웠으나, 또한 정의롭지 못했다. 대통령을 뽑은 촛불도, 대통령을 쫓는 불꽃도 결국 국민이 발화자이기 때문이다. '어리석음'의 이중성이다. 우린 좋아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증오하는 자들의 추락을 원하지만 결과는 항상 반대로 나온다. 반사이익을 챙기는 사람은 따로 있다. 낭떠러지로 밀었는데, 밑으로 떨어지는 건 철저하게 약자다. 참으로 수치스러운 나날들이다.
▶번번이 비극적 결말을 맺는 대통령의 잔혹사 속에서 국민만 죽어난다. 멀쩡했던 'president'가 없다. 어떤 이는 죄수가 됐고, 어떤 이는 총탄에 맞았으며, 어떤 이는 벼랑에서 뛰어내렸다. 차라리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없애자는 말까지 나온다. 2004년 3월 12일, 국회가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했을 때 대한민국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총리가 대통령을 대신한 63일 동안 '나라가 오히려 더 잘 돌아간다'는 얘기도 있었다. 2012년 12월 박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고했던 일성(一聲)이 왜 이리 참담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저는 돌봐야 할 가족도, 재산을 물려줄 자식도 없다. 오로지 국민 여러분이 저의 가족이고, 국민의 행복만이 제가 정치를 하는 이유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