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혁 농협대전공판장 사장
[경제인칼럼]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풍년이 든다는 속담이 있다. 옛날 보릿고개 시절 이야기다. 이제는 풍년의 역설을 이야기 한다. 풍년이 들면 농민은 울상이다. 다른 지역에 흉년이 들고 우리 지역만 풍년 들어야 진짜 풍년이라고 할 수 있다. 홍수가 나면 저지대에 농사를 지은 농민은 울지만 고지대에 농사를 지은 농민은 웃는 일이 발생한다. 농사에서 남의 불행이 나에게는 행복이라는 해프닝이 자주 발생한다.

얼마 전 전북 고창에서 농협 관계자와 생산자가 출하 상담차 방문했다. 해마다 무를 심었는데 계속 시세가 안 나와 금년에는 생강을 많이 심었더니 생강가격은 폭락하고 무 시세는 최고시세를 달리고 있다고 후회와 탄식을 하고 돌아갔다. 농업도 예전처럼 먹고 살기 위한 생존의 개념이 아닌 엄연한 하나의 직업으로 존재하는 것인데 투기사업이나 주식시장처럼 느껴지는게 한탄스럽다.

완전경쟁시장은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렵지만 가장 가까운 시장이 농산물시장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중심이 되는 가격결정체계가 도매시장의 경매제도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품목의 농산물 시세가 낮게 형성되는 경우란 재배면적이 늘고 작황이 좋아 품질이 우수한 상황으로서, 중 하품보다 특품의 비율이 많고 당도도 높은 경우에 해당되며 재배과정에서 농약사용량도 상대적으로 적다. 반대로 시세가 높게 형성된다는 의미는 작황이 좋지 않아 농약 사용량도 많고 특품보다 중 하품의 비율이 높으며 당도도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를 의미한다. 그런데 소비자는 가격이 쌀 때는 해당농산물을 외면하고 비싸지는 경우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경향이 있다.

농산물시장에 있어서 생산자 농민은 가격순응자(Price taker)의 입장에 처해 있다. 농민은 혼자서 시장조건의 변동에 대처할 수 없으며 스스로 가격을 정할 수 없고 그저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경제적 약자이다. 우리나라 농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현재 추진하고 있는 두가지 정책을 적극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산지의 조직화·규모화를 적극 확대하는 일이다. 농민은 다수가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어 시장에서의 교섭력이 없다. 우리 공판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문제점은 소량 다품목 출하주가 너무 많고 출하주별로 가격이 천차만별로 형성된다는 점이다.

생산자를 하나로 통합해 공동선별 공동출하시스템을 갖추고 대외 교섭력을 높인다면 모든 유통과정이 단순화 되고 보다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될 수 있다.

두 번째는 정부에서 현재 추진하고 있는 도매시장 거래제도를 경매위주에서 정가·수의매매로 적극 확대 개선하는 일이다. 경매제도는 수급에 따른 가격변동성이 크다는 단점이 존재하지만 정가·수의매매는 사전 가격조절기능 발휘로 가격변동성을 완화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정가·수의매매는 산지의 조직화 규모화와도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이순신 장군은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나는 미래의 공판사업의 성패가 정가·수의매매거래 확대에 있다는 신념에서 이순신 장군의 명언을 빌어 사자성어를 만들어 현수막을 사무실에 걸어 놓았다. 경사정생(競死定生). “경매를 고집하면 죽을 것이요 정가·수의매매를 추진하면 살 것이다.”

본격적인 김장철로 접어들고 있다. 김장을 하면서 배추를 한 포기라도 더 담그고, 생강가격이 폭락했을 때 감기예방차원에서 생강차를 자주 끓여 먹는다면 우리 몸에도 좋고 시름하는 농민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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