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엔디컷 우송대학교 총장
[화요글밭]

한국에서 산지 9년.

한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큰 필자는 해외에서 손님이 방문하면 가깝게는 남간정사, 동춘당, 우암사적공원으로, 조금 멀게는 공주 무령왕릉, 국립공주박물관으로 안내한다.

남간정사와 동춘당에 가면 한옥의 우아함과 선비정신을, 공주에 가면 1500여년 전에 만들었다고 믿기 힘들만큼 정교한 무령왕릉과 출토된 유물들의 아름다움에서 백제인의 진취성과 예술적 감각을 자랑스럽게 설명한다. 해외에서 온 손님들에게는 한국의 역사적인 유물이 가장 인상적이며 흥미로운 상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어느 곳을 방문하든 거기에 깃든 역사에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여 듣는다. 최근 중국의 청두(成都, Chengdu)와 지난(濟南, Jinan) 두 곳을 방문했는데 두 곳 모두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곳이어서 출발 전부터 기대가 되었다.

청두는 중국 서부지역의 중심지이자 쓰촨(四川, Sichuan)성의 성도이다. 청두에 간 이유는 쓰촨대학교 개교 12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받아서였다. 청두는 삼국지의 역사가 살아 있는 곳이며 춘추전국시대에는 촉(蜀)의 도읍지였고, 유비와 관우, 장비가 나라의 기반을 갖춘 의미 있는 도시이다. 국민당이 중국 본토에서 최후까지 점유하던 도시이기도 하다. 곳곳에 스토리가 숨어 있는 청두에 관심을 보이자 학교관계자가 '물의 만리장성'이라 불리는 '두장옌(都江堰)'에 가 볼 것을 추천했다.

쓰촨성은 이름처럼 4개의 큰 강이 흐르고 땅이 기름져 '하늘의 곳간'이라고 불린다. 홍수와 가뭄이 없고 물자가 풍부한 '천부지국(天府之國)'으로 불리는 것은 환경적인 혜택도 있지만 그보다도 고대에 만들어진 관개수로(灌漑水路) 덕분이다. 2200년 전 강의 물줄기를 바꾸고 수량을 조절하기 위해 축조했으며 과학적이고 생태적인 시스템으로 지금까지 농업용수, 홍수조절의 역할을 하고 있다.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두장옌 수리시설을 통해 흘러나온 수로가 3만 개로 주변 40여개 시와 현에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다고 하니 예로부터 훌륭한 제왕이란 치수(治水)를 잘한 왕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한국음식 덕분에 매운 맛에 나름대로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쓰촨의 음식을 먹는 순간, 그동안 필자가 경험했던 매운 맛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것을 알았다. 식재료가 풍부해 쓰촨 요리가 베이징, 상하이, 광둥과 더불어 중국을 대표하는 4대 요리로 꼽히기는 하지만 맛이 얼얼하고 매콤한 것이 특징이라는 것을 제대로 경험한 순간이었다.

쓰촨대학교 개교 120주년 공식기념행사에 참석해 캠퍼스 투어를 하고 학생들과 대화하는 도중에 이곳이 미국비행대와 인연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필자가 공군출신이기 때문에 더욱 반가웠다. 중일전쟁 당시 일본 육군 항공대의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중국 하늘을 점령하자 당시 빈약한 중국 공군을 대신해 용병 전투 비행단인 미국 플라잉 타이거즈(American Flying Tigers)를 창설하게 된다. 이 조직은 미국에서 자원한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로 100P-40 항공기를 조종하여 일본공군에 용감히 맞서 싸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일정으로 산둥(山東, Shandong)성 지난(濟南)에 있는 산둥교통대학교에 방문하여 우송대와 산둥교통대가 공동으로 설립한 우송국제교육센터 개소식에 참가했다. 산둥성은 공자와 맹자의 고향으로 그만큼 고대 문화의 중심지이며 사람들의 자부심도 대단한 곳이다. 마르코 폴로의 아시아 여정 중에 방문한 곳이기도 하다. 지난 역시 3개의 강이 흐르고 72개의 샘이 솟는다하여 물의 도시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 시내에 자리 잡은 다이밍(大明) 호수는 여러 개의 연못이 합쳐진 천연호수로 사람들의 휴식공간이다.

몽골이 지배하던 시절 쿠빌라이 칸에 대항하던 지난의 성주가 방어선이 돌파되자 명예를 지키기 위해 호수에 몸을 던졌던 역사적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몽골군에 대항하는 이들에게 본보기를 삼기위해 그를 다시 건져내 처형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중국 어디를 가든지 연못 하나, 돌 하나에 깃든 역사는 정말 흥미진진하다. 다만, 상상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흥미로운 역사를 마음껏 즐길 수가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대전과 충남지역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것도, 해외에서 온 손님들에게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설명할 수 있는 것도 항상 상상의 눈으로 보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상상의 눈으로 보는 순간, 모든 것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보이고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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