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라도 세상에 드러난것이 다행, 박근혜 대통령 이미 국민 신뢰 잃어, 더이상 책임전가·수습지연 해선 안돼
정상적인 차기 대선환경 조성 필요, 개인 고립시키는 종교는 사이비종교, 올바른 종교는 이성·양심·상식 요구
현재 대한민국 곳곳 갈등·대립 심각, 이기주의·무한경쟁 탈피해 소통해야

▲ 유흥식 천주교 대전교구장이 지난 4일 본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현 사태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기본'과 '원칙'으로 돌아갈 것을 주문했다. 정재훈 기자 jprime@cctoday.co.kr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민족과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마을에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지역의 웃어른을 찾아가 지혜를 구하고 해답을 얻고자 했다.

비선실세 스캔들, 최순실 게이트, 사교(邪敎)의 국정농단 파문 등 정국이 혼란에 휩싸인 가운데 지금도 국민들은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거리로 나서고 있다.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각계각층의 시국선언이 보여주듯 국민들의 분노와 상처도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는 현 시점에서 충청투데이는 지난 4일 서면 인터뷰를 통해 천주교 대전교구장이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인 유흥식 주교를 만났다.

유 주교는 국민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한편 담담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내 손에 민주주의가 달렸다는 의식’을 가지고 주권을 책임있게 행사할 것과 어려울 때 일수록 이웃을 먼저 생각할 것을 강조했다.

-최근 비선실세 스캔들로 나라가 시끄럽다. 이를 바라보는 심정이 어떠신지.

“저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충격적인 일이다. 상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 한편으론 지금이라도 세상에 드러난 것이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일 이런 상태로 1년 더 국정운영을 하였다면 나라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상상을 하면 끔찍하다. 이제 이런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하는 숙제가 국민들에게 주어졌다. 어려울 때 우리가 어느 정도 성숙한 사람이고 나라인지가 나타날 것이다. 우리 국민은 성숙하기에 결국 잘 극복해내리라 믿는다. 물론 모든 원인을 제공한 대통령은 진심으로 뉘우치는 마음으로, 가톨릭으로 말하면 '고해성사'하는 마음으로 솔직히 고백하고 겸손하게 국민에게 용서를 청하며 자기를 비워야 할 것이다.”

-종교계 원로로서 헌법과 민주주의가 유린당한 현재의 난맥상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른바 '비선실세'를 통해 국정을 농단한 것은 국민주권과 법치주의 원칙을 유린한 반헌법적인 행위이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기본 원칙을 대통령부터 바로 지켜야 할 것이다. 다른 면으론, 우리의 가치관이 문제다. 급속한 발전만을 추구하다보니 우리사회에 황금만능주의, 이기주의, 성공주의가 만연해 있다. 올바른 과정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과 권력을 가지려는 우리의 욕심이 있는 한 계속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다. 권력 또는 재물이 우리 삶과 행복의 목표가 되어선 안된다.”

-일부에선 '탄핵'과 '하야', '거국중립내각' 등의 의견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권의 책임있는 모습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

“무엇보다도 대통령의 태도가 중요하다. 불행하게도 지금 대통령은 이미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무엇을 할 수 있는 권위도 잃어버렸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바라보고 인정하며, 국민과 국가를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사심없이 하시길 바란다. 대국민 담화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신뢰가 느껴지지 않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책임전가나 사실은폐 및 수습지연은 국정공백과 민심의 공황상태를 가속시킬 뿐이다. 또한 정치권에서는 자신의 위치나 당리당략이 아니라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호소한다. 정상적으로 다음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동안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해온 사교(邪敎)가 국정을 농단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는데.

“대통령이 오랫동안 건전하지 않는 특정 사람과 사교(邪敎)의 영향을 받아왔다는 뉴스를 접하고 놀랐다. 물론 종교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돼 있다. 특정 종교를 '잘못됐다’고 멋대로 규정하는 것은 종교를 믿는 사람에 대한 또다른 폭력일 수 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개인을 일상생활에서 고립시키는 잘못된 교단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그들을 '사이비 종교'라고 부른다. 만일 당신이 믿는 종교가 일상을 단절시키고,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며 당신을 착취하려고 한다면 그 종교는 당신과 이웃들까지 불행에 빠뜨릴 수 있다. 올바른 종교는 건전한 이성, 양심과 상식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하고 이웃과 더불어 살며, 자신과 이웃을 성숙하게 할 것이다. 대통령이 그 사실을 부정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아 그런 사이비에 빠져서 국정을 봐왔다는 것에 실망을 금치 못하겠다.”

-이 시점에서 종교인들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나.

“사이비가 아닌 한, 자신의 종교에서 가르치는 가르침에 충실해야 한다. 누구에게 강요하기보다 자신이 먼저 믿고 따르는 종교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한다. 이론이 아니라 삶으로 선의의 경쟁을 했으면 좋겠다. 참된 믿는 이들의 모습은 서로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며,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소외된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종교계를 비롯해 교사, 대학가, 문화계 등 지역 각계각층에서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들이 받은 상처도 큰 상황인데.

“국민 모두에게 너무도 큰 실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국민을 통합하고 모두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던 걸 기억한다. 그러나 대통령 자신이 약속과 다르게 소통하지 않았고, 우리 사회는 물론이고 남북 관계와 주변국과도 더 큰 대결의 상황으로 만들었다. 이런 나라의 상황을 보면서 정의와 평화를 외치고, 의노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닐까 싶다”

-최순실 게이트를 비롯해 한 번 더 상기됐지만 그동안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사회구조 문제에 대한 지적은 많이 제기돼왔다.


“최순실 게이트라고만 얘기하기엔 대통령의 책임이 너무 크다. 그리고 우리는 남북이 갈라져있는 상처 때문인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모든 면에서 대화와 타협, 상생보다는 갈등과 대립이 유난히 심한데, 그 근본엔 소통의 부재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생각만 옳고, 나 중심으로만 생각하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무한경쟁이 '함께 행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선순위에서 밀어내고 있다. 우리 사회에 올바른 대화와 소통의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한다. 올바른 대화를 위해선 마음을 열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받아주어야 한다. 나도 잘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서로 대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을 솔직히 바라보고, 마음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구조를 이렇게 저렇게 바꿔야 한다고 얘기들을 하는데, 근본적인 우리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구조를 아무리 바꾼다 해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를 비롯한 가톨릭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저는 지난 1일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명의로 발표한 시국 선언문을 통해 ‘교회는 정의에 위배되는 죄악의 구조를 반대한다(「사회적 관심」, 37항 참조). 공동선에 심각한 해악을 주는 권력 구조는 반드시 개혁돼야 한다. 교회는 세상을 바꾸고 진실한 가치를 전달하며 더 나은 세상 건설을 위해 투신하는 참다운 신앙의 소명을 실천할 것이다(「복음의 기쁨」, 183항 참조). 교회는 그동안 예언자직을 온전히 수행해 왔는지를 겸허히 반성한다. 신자들은 정의와 평화에 투신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주신 힘과 수단을 유용하게 활용해야 할 의무(「가톨릭교회 교리서」, 2820항 참조)를 기억하며, 현 사태에 관심을 기울이고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 적극 참여해야 한다. 또 국정의 정상화와 국가의 안정을 위해 인내하고 기도하면서 함께해야 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가톨릭교회 신자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자비롭고 정의로운 삶을 살려고 노력하면서 사회의 불의에도 과감히 맞설 것이다.”

-국가가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국가를 걱정해야 하는 이 상황에서 혼돈스럽고 힘들어 하는 국민들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를 전한다면.

“우리 민족은 어려움에 처하면 굳은 마음으로 함께 일어나곤 했다. IMF의 경제 위기에서 금모으기로 어려움을 극복했다. 앞서 말씀 드린대로, 어려울 때 본성이 드러나게 되어있는데, 우리 국민은 성숙하게도 어려울 때 일수록 마음을 모아 함께 이겨내곤 했다. 나 자신의 힘든 것만을 생각하면 모두가 지옥의 삶을 살게 되지만, 이웃을 생각하면 모두가 더불어 천국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아는 지혜로운 민족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힘들수록 어려운 이웃을 먼저 배려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정치인들을 욕하기 전에 ‘내 손에 민주주의가 달렸다는 의식’을 가지고 주권을 책임있게 행사하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 성숙한 민주주의 시민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리=강은경 기자 ekkang@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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