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수 ETRI 테라헤르츠원천연구실 선임연구원
[젊은과학포럼]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는 ‘창으로 무장한 세 남자’라는 로마 시대 그림이 있다. 그림 속 세 남자 중 한 명의 왼손 아래에 원래는 어떤 남자의 얼굴이 있었다는 사실이 2013년 미국 로체스터대 연구진에 의해 밝혀졌다. 이는 훗날 그 부분을 덧칠하면서 지금은 보이지 않게 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당시 이 사실을 밝히는 데 활용된 것이 바로 테라헤르츠파다.

테라헤르츠파는 1초에 1조번(테라) 진동하는 전자기파다. 이것은 스펙트럼에서 원적외선(광파, 빛)과 마이크로파(전파) 사이에 위치해 직진하는 빛의 성질과 물질을 잘 투과하는 전파의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다. 물질을 잘 투과하면서도 x-ray에 비해 에너지가 낮아 인체에 해가 없으며, 스펙트럼을 이용해 물질 고유의 특성파악도 가능하다.

이러한 특징들로 테라헤르츠파는 ‘꿈의 주파수’로 불리는 인류의 마지막 미개척 전파대역으로 여겨지며, 다양한 분야에서 팔색조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 받는다. 우선 의료 분야에서 테라헤르츠파는 암 질환 및 화상 등의 진단에 쓰일 것이다. 치아 및 반도체 등에 손상을 주지 않는 비파괴 검사도 가능하다. 나아가 파수꾼 같은 감시 역할에서도 빛을 발할 것이다. 옷이나 가방 속에 숨겨진 폭발물과 마약 등을 검출하고, 환경 모니터링 및 유해가스의 검출, 식품의 신선도 검사를 가능케 한다. 뿐만 아니라 1000배 더 빠른 무선통신 등 국민 실생활과 관련해 이루 열거할 수 없이 많은 응용 분야에 활용될 수 있다.

필자는 대학원에서 도파 구조를 이용한 테라헤르츠파의 제어 및 응용이라는 주제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ETRI에서 사회 첫 걸음을 시작한 초보 연구원이다. 기존의 실험실 수준의 연구 결과를 벗어나, 앞서 언급한 수많은 응용 분야에 적용이 가능한 경쟁력 있는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이곳에서 새롭게 반도체 광소자 연구를 시작했다. 지난 3년 동안 테라헤르츠 포토닉스 연구에 필수적인 반도체 광소자 결정 성장, 소자 설계 및 공정의 전 영역의 경험을 통해, 초소형의 테라헤르츠 발생 및 검출 소자 개발에 성공했다. 이 분야는 개발 경쟁이 치열하고, 시간적으로 뒤처질 경우 투자한 연구비, 노력 등이 한꺼번에 수포로 돌아갈 수 있어 막중한 부담감이 존재하지만, 성공 시 미개척 영역을 선점할 수 있어 보람 있는 연구 주제이다.

현재 필자가 몸담고 있는 ‘테라헤르츠원천연구실’은 약 6년 전부터 초소형, 다기능, 저가격 실현이 가능한 테라헤르츠 핵심 소자의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소재에서부터 소자, 모듈, 시스템까지 전 기술을 순수 국내 기술로 자체 개발했다. 또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해 선진국 유수의 연구그룹과 경쟁하며 테라헤르츠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연구그룹이다.

우리는 각고의 노력의 결과, 국내 대기업 생산 공정에 적용이 가능한 수준의 테라헤르츠 비파괴 측정 기술을 탄생시켰다. 즉 플라스틱이나 섬유 등을 투과해 볼 수 있는 테라헤르츠파를 이용해 자동차 제조시 차별화된 품질 검사 및 안전 관리가 가능한 상용 기술 개발에 성공했고,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이는 테라헤르츠 기술의 산업적 적용의 첫 사례이며 무엇보다 순수 자체 개발된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얻게 된 성과로, 그 결과가 매우 기대된다. 나아가 산업 적용에 이어, 그 동안 실험실 수준으로만 제시됐던 수많은 미래 기술들이 현실화되면, 진정한 ‘꿈의 주파수’가 실현될 것으로 굳게 믿고 오늘도 실험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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