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 당연히 오곡(五穀), 오육(五肉), 오과(五果), 오채(五菜)로 다스려야지, 어찌 마른 풀과 죽은 나무의 뿌리에 치료 방법이 있을 수 있겠는가."

궁중에서 의약을 공급하던 관청인 전의감에서 근무한 전순의가 조선 세조 6년(1460)에 편찬한 '식료찬요'(食療纂要)의 서문 중 일부다.

천민 출신이지만 정2품의 지위에 오른 의관인 그는 현존하는 국내 최고(最古)의 요리 전문서인 '산가요록'(山家要錄)을 쓰기도 했다. 전순의는 두 책에 조선시대 전기의 음식 조리법과 '의식동원'(醫食同源·의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 사상을 남겼다.

신간 '음식 고전'은 1450년께 발행된 '산가요록'부터 1957년 출판된 '이조궁정요리통고'까지 약 500년간 나온 음식 서적 37권을 정리하고, 이들 책에 등장하는 음식 109가지의 조리법을 소개한 책이다.

'이조궁정요리통고'를 쓴 고(故) 황혜성 숙명여전 가사과 교수의 딸인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 이사장, 한복진 전주대 교수와 궁중음식연구원 학예연구실장을 맡고 있는 이소영 씨가 함께 썼다.

지난 2001년 청계천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된 '산가요록'에는 음식 230여 가지의 조리법이 남아 있다. 각종 술 빚는 법과 장 담그는 법을 비롯해 김치, 죽, 떡, 국수, 탕을 만드는 방법이 실렸다.

또 '식료찬요'에는 식재료별 효능이 상세하게 정리됐다. 저자인 전순의는 천식 치료에 좋은 음식으로 잉어·무·배를 추천했고, 피부 미용에 효과가 있는 음식으로는 굴을 꼽으면서 "방금 딴 굴을 불 위에 놓고 끓도록 구운 다음 껍데기를 제거하고 먹으면 피부가 부드러워진다"고 설명했다.

허균이 1611년 펴낸 문집의 일부인 '도문대작'(屠門大嚼)에는 팔도의 명물 음식이 열거됐고, 양반가 여성이 1670년께 한글로 쓴 '음식디미방'에는 고추 대신 후추와 겨자 등으로 매운맛을 낸 음식의 조리법이 수록됐다.

음식 서적은 실용학문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19세기부터 폭발적으로 늘었다. 가정생활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규합총서'(閨閤叢書)를 필두로 주요 절기에 먹는 음식을 기록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잔치 음식의 표본을 제시한 '윤씨음식법' 등이 만들어졌다.

학교에서 조리 교육이 이뤄지고 신여성을 상대로 요리 강습이 생겨난 구한말 이후에는 오늘날과 유사한 형태의 요리책이 제작됐다.

이들 책에 대한 각종 정보 외에도 우리 음식에 많은 영향을 미친 중국 조리서, 시대 문화가 드러나는 특색 있는 문헌 등 다양한 읽을거리가 담겼다.

한복려 이사장은 서문에서 "음식에 대한 관심은 커졌지만, 한국 음식의 역사를 말해주는 기록물은 많지 않다"고 지적하고 "긴 세월 뿌리내리면서 가지를 쳐온 우리의 전통 음식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현암사. 596쪽. 3만8천원.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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