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문화카페]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대결이라는 거창한 표현은 그리 적절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올 추석 개봉된 영화 '벤허'는 1959년 작품 '벤허'와 여러 면에서 비교되어 관심을 끌었다. 리메이크 작품이 원본을 넘어서기가 그리 수월치 않다는데 예전 작품은 반세기를 지나는 동안 할리우드 전성시절 제작된 대규모 영화의 고전으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감독의 탁월한 역량, 찰톤 헤스톤 등 출연진의 박진감 있는 연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규모 물량을 투입한 정공법적 제작태도가 포인트였다.

그동안 여러 번 봤던 옛 '벤허'의 기억을 가급적 누르면서 새 '벤허'를 봤다. 매끄러운 화면에 유려한 색상, 기술 격차를 확연히 느끼게 하는 여러 세부적인 배려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영상미를 느꼈다. 예전 '벤허'에서는 컴퓨터 그래픽의 개념조차 없던 환경이어서 대부분의 세트를 직접 축조하여 사용했고 대규모 군중 신 같은 장면도 실제 인원을 동원하여 찍었는데 아날로그, 디지털의 각기 장단점은 개인적인 취향의 몫으로 넘어간다.

스토리 전개와 인물 성격구현 그리고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의 의도 등이 결국 변별요인으로 남는데 1959년 작품에서는 이른바 대중서사의 기본구도를 충실히 따른 결과 지금도 전형적인 대중서사 플롯의 교과서로 영화 '벤허'의 얼개가 인용되고 있다. 주인공과 대척점에 있는 또 하나의 인물, 둘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대결을 펼쳐가고 주인공은 억울한 누명으로 절체절명의 역경에 처하지만 천신만고 불굴의 의지로 이를 극복한다. 그런 다음 해피엔딩 속에서 모든 것을 정리, 수습한다는 식상한 이야기 구도는 그 후 특히 중국 무협영화, 각종 재난영화 등에서 거듭 되풀이되었다. 현대인에게 익숙한 이런 대중서사구조 전개가 다소 약화되었다는 느낌을 화려한 첨단 기술이 어떻게 보완하는가는 온전히 관객의 판단으로 남은 듯하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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