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 한국무역협회 대전세종충남지역본부장
[경제인칼럼]

지난 10월 1일부터 중국 위안화가 IMF(국제통화기금)의 SDR(특별인출권) 기반통화(바스켓)에 정식 편입되었다.

SDR은 IMF가 창출한 일종의 국제준비자산으로 IMF 가맹국이 국제유동성을 인출할 수 있는 권리이다. 그 기반통화를 구성하는 달러화, 유로화, 파운드화, 엔화에 위안화가 새로이 더해진 것이다. 편입비율 또한 10.92%로 달러화(41.73%), 유로화(30.93%)에 이어 3위이다. 이로서 위안화의 국제결제비중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먼 훗날 중국의 꿈(中國夢)이 실현되어 위안화가 달러를 구축하고 제1의 기축통화가 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44년에 미국은 유럽 각국에 금 약 8000t을 담보로 하여 금 1온스에 35달러를 기준으로 하고 각국의 통화를 달러와 연계시켜 환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브레틴우즈체제를 제안 통과시키는 한편 IMF를 설립하여 미국 주도의 달러화 패권시대를 열었다. 브레틴우즈체제는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국가들이 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에서 벗어나면서 미국에게 보유한 외화를 금으로 교환해 달라고 요구하자 금 위기를 맞게 된 미국의 닉슨대통령이 1971년 8월 금본위제를 전격 폐지하면서 끝나게 되었다. 금본위제의 폐지로 변동환율시대로 접어들게 되었으며 제1의 기축통화 지위에 있는 달러가 금태환의 굴레를 벗게 되며 무한발권의 특권을 갖게 되었다.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확대될수록 달러의 유통량과 미국의 해외자산이 증가하고 달러의 위상은 더욱 커져 갔다.

물론 무분별한 화폐의 발행은 화폐가치의 하락을 가져와 부작용을 야기하지만 미국은 세계 유일의 슈퍼파워 지위에 있기에 이의 폐단을 줄이고 약소국가에 전가할 수 있었다. 70년대 중동전쟁과 오일파동으로 오일이 달러와 연계되어 거래되고 막대한 오일달러가 뉴욕금융시장으로 몰리면서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더욱 공고해 졌다. 미국은 금리인상과 하락을 반복하며 달러를 회수하고 푸는 정책을 반복해 왔다. 이 와중에 외환보유고가 적고 체력이 약한 국가들은 외환사태를 맞아 막대한 국부의 유출사태를 맞이했다.

미국은 1985년부터 1995년까지 약달러 정책으로 달러의 대 확장을 꾀하였다. 1986년 약 1조 7000억 달러였던 미국의 해외자산이 1996년에는 5조 2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10여년간 지속된 달러의 대 확장은 달러가치를 크게 떨어뜨렸으며 일본, 한국 및 동남아 및 여러 국가에서는 달러유입이 확대되어 자산버블이 발생했다. 달러가 하락하자 각국이 달러 투매에 나선 결과 전 세계 외환보유고중 달러비중이 1985년 65%에서 1995년에는 54%로 떨어졌다. 이에 미국 글린턴 행정부는 10년 전 레이건 대통령이 시행한 강달러 정책을 다시 시행하여 글로벌자본의 미국 환류를 꾀하였다. 그 결과 2001년에는 각국의 외환보유고중 달러비중이 70%를 넘어섰다. 이러한 와중에 한국 및 동남아 신흥국가들이 외환위기를 맞아 막대한 국부 유출의 손실을 입었으며 일본도 잃어버린 20년의 길을 가게 되었다.

미국은 달러패권에 도전하는 국가에 대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무력화시켰다. 엔화의 부상과 추락이 그러했고 유로화 또한 그러했다. 이제 중국의 위안화가 새로이 부상하고 있다. 등소평은 중국이 미국을 능가하는 시점을 2050년으로 설계하였으나 불과 10년도 채 남지 않은 미래에 중국의 GDP가 미국의 GDP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위안화의 국제거래비중이 미국에 버금가게 되면서부터 달러패권시대는 끝이 날 것이다. 이를 미국이 어떻게 방어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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