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자동차를 샀을 때 너무 설레 밤을 꼬박 샜던 기억이 있다. 밤새 흠집이라도 날까 안절부절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온전한 육신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몹쓸 이웃이 애마(愛馬)에 생채기를 냈던 것이다. 그 상처는 제살을 베듯 아팠다. 그날 이후 차(車)는 빠른 속도로 망가지기 시작했다. 흉터 난 애마에 대한 애정이 식었던 탓도 있었지만, 시시때때로 얼굴 없는 가해자들이 '테러'를 가했기 때문이다. 결국 신차는 몇 년 만에 중고차가 되어 전쟁 중이던 리비아로 팔려갔다. 마치 매춘 같았다. 그 찝찝한 기분은 트라우마(trauma)가 되어 오래도록 불면을 가져왔다.

▶문콕, 문콕~ 자동차 문 찍는 소리가 사방에서 점점 더 잦아진다. 제 몸에 난 상처는 용납하지 않으면서, 남의 몸은 가벼이 여기니 못된 심보다. 그 흠집은 너무도 은밀해 피해자만 있을 뿐이다. 철저하게 가해자는 보이지 않고 바람자국만 남는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 운전 문화와 구닥다리 행정 탓이 크다. 현재 주차장의 너비는 2.3m다. 차 몸집은 커지고 있는데 주차장 규격은 26년째 그대로다. 이 기준은 1990년 기존 2.5m에서 0.2m 축소된 이후로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 2.17m 너비의 자동차가 2.3m 주차장에 안착하려면 틈새에 끼여야한다. 온몸을 비틀고 구겨 넣어야한다는 얘기다. 몸의 거푸집을 대충 만들어놓고 몸을 맞추라는 격이니 날강도다.

▶이 모든 불법은 익명성에 있다. 못 봤을 것이라는 확정적 단정이 가져온 테러다. '살짝'이라는 부사(副詞)를 통해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내 탓이 아니라 네 탓, 내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라는 그럴듯한 변명을 통해 타인의 재산을 흠내는 행위다. 결국 내가 문콕을 하면 가볍게 '쏘오리'만 외치고 개구멍으로 빠져나간다. 반대로 남이 문콕을 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욕들이 작렬한다. 사람이 주차장에서 타고내릴 때 여유 공간은 30㎝ 안쪽이다. 30㎝만 더 넓혀줘도 양심의 면적은 꽤 넓어질 텐데, 0.3m의 여유가 없다.

▶남성은 말을 듣지 않고, 여성은 지도를 못 읽는다는 얘기가 사실일까. 싸울 때 여성은 '끝장을 보자'고 하고, 남성은 '나중에'라며 미루는 것도 같은 통념일까. 오랜 세월 남성은 사냥하러 돌아다니고, 여성은 동굴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것인데, 믿거나 말거나다. 누구나 마음의 깊이와 넓이는 다르다. 소갈딱지가 밴댕이만한 사람들이 배려하지 않는 법이다. 차(車)와 차(車) 사이, 마음과 마음 사이, 이웃과 이웃 간 정념의 간격은 결국 혜량(惠諒·헤아려 살펴서 이해함)의 유격이다. 배려의 넓이는 줄어드는데 주차면적까지 줄어드는 비좁아터진 세상, 우리는 마음의 부피를 넓혀야한다. 깊어지면 좁아지고 넓어지면 얕아진다. 문콕 테러범들과 소갈머리 없는 자들에게 은밀하게 경고한다. "우리는 네가 한 짓을 알고 있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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