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철 충북본사 정치경제부장
[데스크칼럼]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우리의 ‘일상(日常)’을 바꿔놓고 있다. 시행 10여일만에 그동안의 관행과 관습이 사라졌다. 찬반은 여전히 치열하지만 ‘공평·공정사회를 만들자’는 법 취지가 옳은 이상은 그에 수반되는 문제들은 우리가 감내해야 할 몫이다.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는 기관은 4만 여개에 달한다. 중앙·지방행정기관, 시·도 교육청, 일선 학교, 언론기관(신문, 방송, 잡지, 통신, 인터넷신문), 국회·법원·행정재판소·선거관리위원회·감사원 등이 그것이다.

직접 대상자는 약 240만명. 여기에 그들의 배우자까지 포함하면 법의 적용을 받는 대상은 대략 400만명이다. 또 이들 법 적용 대상자들과 접촉하는 경우 김영란법의 허용범위를 넘어서는 행위를 하게 되면 처벌을 받기에 전 국민이 법 적용 대상인 셈이나 마찬가지다. 그만큼 대단한 위력을 가진 법이 바로 ‘김영란법’이다.

김영란법은 김영삼정부 시절 도입된 ‘금융실명제’에 비유된다. 실명제 이전의 금융거래는 한마디로 불법·탈법 천지였다. 실명제가 도입된 이후 금융거래는 투명해졌고 더 이상 지하경제가 존재할 수 없게 됐다. 혁명적인 변화였던 셈이다. 김영란법 역시 이에 버금가는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관행과 관습,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들이 세상을 지배해 온 것이 사실이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벌써 사회곳곳에서는 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각종 모임·회식이 현격히 줄어든 것은 물론이고, 장례식장의 조화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축·부의금이 혼례와 장례에 한정되다보니 돌과 회갑 등은 이제 가족행사로 변하고 있다.

이렇게 엄격한 김영란법이다보니 이를 회피하는 방법 등도 회자되고 있어 씁쓸함을 남기고 있다. 택배로 온 선물은 반드시 반송하라는 것이다. 명절의 경우 택배로 오는 선물이 많은데 택배로 온 선물은 가격 여하를 불문하고 반드시 반송할 필요가 있다는 것인데 운송과정에 란파라치가 운송장을 찍은 후 상당 기간이 지나도 반송하지 않은 선물을 신고하는 경우를 예상할 수 있고,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에 란파라치가 택배기사거나 택배회사 직원일 경우 공직자가 이 그물을 피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다.

또 공직의 부하직원 등에게는 물 한 잔도 얻어먹지 말라고 강조한다. 스스로가 직무관련자보다 상위에 있다고 생각하면 직무관련자로부터는 사소한 호의조차도 거절해야 한다며 사진 찍기 좋아하는 부하는 애초에 멀리해야 하고 부하와의 대화는 애초에 녹음되고 있다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골프장 갈 때 카풀하지 말라고도 지적한다. 골프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카풀을 선호하는데 차량 편의제공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기름값을 사람 수로 나눈 것이 아니라 차종과 유사한 택시(고급승용차의 경우 모범택시)의 택시비가 될 것이므로 대부분 원격지에 소재한 골프장으로의 카풀은 무조건 기준을 초과하게 된다는 것이다.

농담반, 진담반의 이러한 이야기들은 현실에 씁쓸함을 더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미 김영란법은 시행됐다. 법의 문제는 개정 등의 과정을 통해 보완하면 된다. 남은 과제는 우리 사회가 이러한 문제들을 받아들일 충분한 포용력이 있느냐에 달려있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