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됐을 때는 불같은 유혹(불혹)을 참았다. 그런데 오십 줄(지천명·知天命)에 이르자 작은 유혹에도 쉽게 흔들린다. 소소한 위기와 갈등 앞에 스스로 무너지고 있다. 두 번째 사춘기인데 인생으로 치면 가을이다. 가을은 하루로 치면 정오를 조금 벗어난 오후다. 생애 단 한번뿐인 전대미문의 이 가을을 갱년기에 내준 것은 거부할 수 없는 노화다. 누구나 사추기(思秋期·갱년기)가 되면 방황한다. 이 방황은 사춘기 때의 반항보다 독하다. 왜 그리 바빴을까.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왜 그리 바보처럼 살았을까. 너무, 조급했다. 무언가를 빨리 이뤄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삶의 여유를 잠식했던 것이다. 불현듯 후회스럽다.

▶나는 지금 갱년기라는 폭풍우 속을 휘청이며 걸어가고 있다. 나를 제외한 이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모든 걸 쏟았다. 그런데 '내'가 없다. '내' 삶이 빠졌다. 나(자아)를 찾으려는데 내가 없다. 뭔지는 잘 모르지만 잘 못 살아온 게 분명하다. 구멍 뚫린 가슴이 시려온다. '냄비'처럼 쉽게 끓고 쉽게 식는다. 냄비 뚜껑이 덜컹이듯 두통과 불안감이 엄습한다. 물론 '내'가 앓고 있을 때 '아내' 역시 앓고 있음을 눈치는 챘다. 그러면서 피로와 권태에 찌든 서로를 날카롭게 흔들어댄다. 나는 나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갱년기라는 힘든 산을 넘느라 헐떡이고 있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건 상처가 아니라 이를 표현할 수 없는데 있다. '오늘은 제발 쉬게 해 달라.'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빨리 사라진다. 꿈도, 희망도 그렇다. 보통 남자들은 평균 시속 5.5㎞로 걷고, 여자는 5.1㎞로 걷는다. 그런데 연인인 남녀는 남자가 여자 속도에 맞춰 느리게 걷는다. 나도 결혼 초에는 아내와 같은 속도로 걸었다. 빨리 가면 빨리 걷고, 느리게 가면 느리게 걸었다. 그러나 가족이 생기자 점점 걸음걸이가 빨라졌다. 아무 것도 없는데 그냥 빨리 걸었다. 심지어 저만치 혼자 걸었다. 아내의 속도에 맞춰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제야 그 속도감에 지쳐간다. 빨리 걷는다는 게, 빨리 늙는 것임을 깨닫기 시작했을 때, 울음이 나왔다.

▶바람이 분다. 그런데 아직까지 온기가 남아있다. 여름은 갔는데, 여전히 가을은 뜸을 들인다. 계절의 속도다. 계절은 마치 갱년기의 권태처럼 때론 거칠게 시간을 붙든다. 아침 밥상을 물리며 아내의 표정을 살폈다. 우린 스무해 동안 서로를 관찰했고, 같은 시간대를 공유했다. 하지만 자세히 알 수가 없다. 갱년기를 겪는 두 사람의 자화상은 는개의 두께처럼 온전치 못하다. 그래, 자세히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오십은 포기할 시기가 아니라 '희망'을 가질 중요한 전환점이 아니던가. 퇴근길에 아내에게 안부를 물어야겠다. "안녕하십니까, 갱년기 씨!"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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