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본사 편집국장
[나인문의 窓]

단식(斷食)은 암울했던 억압의 시절, 주로 야당 지도자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최후의 정치적 저항 수단으로 활용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YS)은 전두환 정권의 정치규제와 가택연금에 항거해 23일간 단식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도 평민당 총재였던 1990년 10월 지방자치제 실시와 내각제 포기를 요구하며 13일간 단식농성을 벌였다.

단식은 흔히 짧은 시간에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 또한 크다. 그래서인지 정치인들의 단식이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단식은 원래 종교적 수행(修行)이나 건강관리가 목적이었다. 이슬람교는 30일 동안 단식하는 라마단 의식을 갖기도 한다. 때문에 정치적 목적의 단식은 점차 대의명분을 잃어가고 있다. 자유마저 억압받던 시절에는 감동을 주기도 했지만,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정치인들이 순수성을 의심받는 단식을 하는 것도 식상하게 바라보는 이유 중 하나다.

최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 처리를 둘러싸고 여야가 퇴로 없는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김 장관 해임건의안 국회 통과에 대한 항의표시로 단식 투쟁을 하면서 긍정과 부정의 시선이 교차하고 있다.

우선 그가 내세운 명분이 야당도 아닌, 여당 대표가 단식할 만큼 그토록 처절 했는가 의구심이 든다.

이 대표는 "과거에 이렇게 하면 쇼로 봤지만 제가 하는 것은 쇼가 아니다"면서 "파괴된 의회민주주의, 더불어민주당의 2중대인 국민의당에 의해 저질러진 횡포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이에 대해 "의원직 사퇴서 내고 의원직 사퇴한 사람 없다. 단식? 성공한 적 없다. 삭발? 다 머리 길렀다"고 힐난했다. 그러면서 "흔히 과거 야당에서 의원직 사퇴, 단식, 삭발, 이 세 가지를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사용했으나 앞으로 이런 세 가지는 제발 하지 말자, 전부 정치쇼로 본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양자의 주장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 대표는 자신의 단식이 희화되는 것에 대해서는 한번쯤 생각해 볼이다. 지금은 유신치하의 암흑시대도, 5공치하의 서슬 퍼런 군부시대도 아니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국민은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인데, 여당 대표가 장관의 해임건의안 통과를 놓고 단식한다는 게 우습지 않은가. 국정감사가 파행되고 경제살리기 법안 등 국회에 계류 중인 민생법안이 수두룩한 데, 인사청문회에서 온갖 의혹이 불거진 장관을 비호하기 위해 여당 대표가 단식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것은 국민의 눈에도 거슬리기 마련이다. 국민들의 탄식이 깊어지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정치를 하려면 쇼(?)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뭇사람으로부터 이러한 의혹을 받지 않으려면 단식을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함부터 담대하게 펼쳐보여야 한다. 1995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옥중단식이 손가락질 받아야 했던 이유만 보더라도 그렇다.

단식을 통해 자신의 뜻이 관철될 수 있다면 세상천지 단식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참에 정치인들의 ‘단식금지법’이라도 만들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