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김영란법 시행 첫날
공직사회 위반 첫사례 경계, 저렴한 식사·더치페이 확산

▲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28일 점심시간. 평소 손님들로 붐볐던 대전 서구 둔산동의 한 대형식당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왼쪽). 반면 같은 시간 대전시청 구내식당에는 평소보다 다소 많은 직원들이 식사하기 위해 길게 줄지어 서있다.(오른쪽). 정재훈 기자 jprime@cctoday.co.kr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김영란법) 시행 첫 날인 28일, 공직사회는 긴장감이 흘렀고 관가 주변 고급식당가는 위축된 분위기가 역력했다.

김영란법은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를 금지해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 신뢰 확보를 위해 시행됐다. 하지만 법률 위반 행위에 대한 이해와 해석에 애매모호한 측면이 많아 공직사회는 ‘당분간은 아예 오해 받을 만한 행동은 하지 말자’는 분위기다.

법률 위반 첫 사례로 적발돼 본보기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심리가 강하게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일부 공직자는 당분간 외부 접촉을 완전히 끊었고, 예정된 부서 회식도 뒤로 미뤘다. 법 시행 첫 날 관가 주변의 점심 상황은 법 시행 이전과 사뭇 달랐다. 공무원들은 구내 식당을 찾아 점심을 해결했고, 관공서 주변으로 나온 공무원들 역시 외부인이 아닌 동료들과 가격이 저렴한 칼국수 등으로 한 끼를 해결했다. 이날 대전시청 주변의 한 김치찌개 전문 식당에는 평소보다 많은 손님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이 식당에서 손님 중 공무원으로 보이는 한 일행들은 “이것은(김치찌개) 김영란법에 걸리지 않지. 그래도 더치페이하자”는 등의 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대전지역 공공기관 구내식당은 예상과 달리 많이 붐비지 않았다. 관세청·중소기업청·산림청·조달청 등 8개 외청이 몰려있는 정부대전청사 내 구내식당엔 평소처럼 500명 안팎의 직원들이 몰렸다.

대전시청 구내식당도 평소와 비슷한 수준(670명)의 직원이 이용했다. 이에 대해 대전시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김영란법에 대해 수 차례 교육을 했기 때문에 직원들이 크게 동요하지 않는 것 같다”라며 “주변 식당을 찾더라도 동료 직원들과 저렴한 메뉴로 점심을 해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공공기관 인근 고급 식당가는 된서리를 맞았다.

정부대전청사나 대전시청, 법원, 검찰·경찰청 인근의 고급 음식점들은 손님이 평소의 절반 이하로 뚝 떨어져 울상을 지었다. 특히 소고기, 참치, 장어 등 원재료 단가가 높아 김영란법이 규정한 3만원 이하의 메뉴를 내놓기 어려운 음식점 주인들은 텅 비어버린 매장을 바라보며 한 숨을 내쉬었다.

이날 저녁, 퇴근 시간 이후 공공기관 주변 식당가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고급 음식점들은 한산하다 못해 텅텅 비었다. 실제 대전시청 인근 한 일식집은 저녁 예약이 1건도 안 들어왔고, 직원들이 손님보다 많았다. 또 다른 유명 음식점은 당분간 저녁식사 영업을 포기해야겠다며 일찍 문을 닫는 웃지 못 할 상황도 연출됐다.

일부 고급 음식점들은 생존을 위한 자구책으로 김영란법 맞춤 세트를 내놓고 대응을 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며 하소연했다. 김영란 전 대법관의 이름을 딴 ‘영란세트’, ‘란세트’, ‘걱정마요세트’ 등의 명칭을 붙여 2만 9000원 대의 메뉴를 선보인 음식점도 등장했지만, 손님들의 반응이 어떨지는 미지수다.

양승민 기자 sm1004y@cctoday.co.kr

이형규 기자 hk@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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