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어허, 지갑은 왜 꺼내. 나를 무시하는 거야? 내가 쏜다고. 앞으로 내 앞에서 지갑 꺼내면 혼날 줄 알아." 딱 하루전만해도 이랬다. 대대손손 내려온 유교적 전통 때문에 아랫것(부하, 후배, 졸병)들은 돈을 쓰고 싶어도 못썼다. 나이가 많거나 선배가 되면 으레 술값을 내고, 밥값을 냈다. 반대로 아랫것들은 공짜로 술을 먹고 밥을 먹었다. 돈을 내는 사람도, 얻어먹는 사람도 이건 불문율이었다. 물론 선배의 호주머니가 두둑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돈'이 없어도 체면 때문에 '돈'을 냈을 뿐이다.

▶"어허, 돈을 왜 안내? 오늘 술값은 뿐빠이(분배)야. 앞으로 입만 갖고 거저먹으면 혼날 줄 알아." 딱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이렇게 변했다. 이제 늙든 젊든 간에 체면은 없다. 먹었으면 n분의1로 깔끔하게 나눠서(더치페이·Dutch pay·각자내기) 내야 한다. 공짜 밥과 공짜 술을 먹었다가는 졸지에 수뢰범(受賂犯)이 된다. 어찌 보면 '김영란(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덕에 선배들의 돈이 굳어졌으니 덩실덩실 춤을 출 판이다. 그런데 더치페이가 그렇게 쉬운 일일까. 하루아침에 자린고비 행세를 하면 주변에 사람들이 남아날까. 참으로 인심이 고약해지게 됐다.

▶송로버섯, 캐비어샐러드, 바닷가재, 샥스핀찜 그리고 능성어찜과 한우갈비…. 얼마 전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먹은 점심 메뉴다. '김영란법' 시행 전에 융숭하게 먹어보자는 심산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그럴싸했다. 사실 '김영란'이 말하는 3만원 식사가 흔한 일이 아니다. 서민들에겐 기껏해야 6000원짜리 국밥 먹는 게 호사다. '김영란'이 식사한도로 정한 3만원을 놓고 얻어먹어도 되네, 안 되네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모습에 자괴감이 든다. 지네들(국민권익위)도 법의 범위를 몰라서 갈팡질팡하는 판국에 간첩 잡는 국가보안법에 있는 불고지죄(不告知罪)를 옮겨와 협박을 하고 있으니 황당할 뿐이다.

▶그래서 묻고 싶다. 진짜 '김영란법' 하나로 세상이 투명해진다고 생각하는지, 400만명의 밥줄을 잡고 뒤흔들면 진흙탕이 깨끗해진다고 생각하는지 말이다. 2004년에 만든 '성매매특별법'이 반면교사가 되리라고 본다. 성매매, 인신매매를 없애겠다고 장담했지만 지하로, 주택가로 숨어들었을 뿐이다. '홍등'은 사라졌어도 여전히 바뀐 것은 없다. 아무튼 몸조심하라. 혹여 마누라가 선물을 받았는지도 눈여겨보라. 북한의 ‘5호담당제’처럼 서로를 의심하라. 국회의원은 '쏙' 뺀 반쪽짜리 ‘법’이 벌써부터 걱정된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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