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관 청주의료원장
[목요세평]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 그 강도가 5.8로 우리나라 지진 역사상 가장 강력한 것으로 그 피해도 커서 경주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됐다. 이렇게 피해가 크다 보니 매스컴을 통해 제기되고 있는 각종 문제점을 듣고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필자는 1994년 1월 미국 LA 북쪽 노스리지에서 일어난 6.8도의 지진을 경험했다. 사망자 57명을 포함해 8700여명의 부상자와 우리나라 돈으로 22조 원 정도의 피해액을 낸 큰 지진이었다. 그 진앙지가 필자가 살던 아파트에서 2마일도 채 안 떨어졌으니 그날의 공포가 얼마나 컸겠는가? 새벽 4시30분경, 지진으로 로스앤젤레스 변전소도 작동을 멈춰 천지가 암흑이었다. 그 속에서 지축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조금 잠잠해져 울며 당황하는 아이들을 달래서 밖으로 나가려하니 문이 안 열렸다. 지진의 요동에 문틀이 휘어졌기 때문이었다. 도와 달라는 외침에 밖에서 몸집이 큰 분이 몸으로 밀어 문틀이 부서진 후 겨우 문이 열려 다른 주민들과 함께 복도 벽을 손으로 더듬거리며 아파트를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밖으로 나온 주민이 들고 있는 소형라디오에서는 계속 지진 대비 안내를 하고 있었다. 동이 트고 아파트 옥상이 내려앉은 건물 모습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겁이 났지만 조심스레 방에 들어가 필요한 것을 챙기는 데 가장 큰 가전제품인 냉장고는 원래 있던 위치에서 1미터 이상 앞으로 나와 있었다. 넘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살고 있던 아파트에 빨간딱지가 붙으며 다시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이사를 또 해야 하는 등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겪으며 미국인들로부터 배운 것이 너무 많다. 교통질서가 그 하나다. 정전으로 교통신호대가 작동하지 않는, 그렇다고 교통순경도 없는 편도 4차선 네거리에서 제일 앞줄에 서 있던 차 네 대가 교행하면 다른 방향으로 가는 네 대가 가고 그렇게 질서정연하게 반복하는 것을 보며 눈물이 날 정도로 부러웠다. 길가에는 기름이 흘러 이곳저곳에 불이 나고 있어도 그 질서는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귀국 후 강의할 때 의학과는 관계없지만 그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학생들에게 들려주었다.

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컴퓨터를 실험실로 옮겨야 했다. 매번 하던 대로 주차하고 무거운 컴퓨터를 들고 한 참을 걸어 건물 앞에 도착했다. 그 건물을 가로지르면 내 실험실이 있는 빌딩이다. 그런데 문 앞에서 직원이 안전점검이 끝나기 전까지는 출입금지라며 못 들어가게 한다. '이 무거운 것을 들고 여기까지 왔고, 30미터만 가면 되는데' 하며 부탁해도 통하지 않는다. 그 때는 속으로 욕을 했어도 그들의 철저한 규정 준수에 존경심마저 생겼다. 지진으로 실험실의 모든 기자재가 쓰러지고 쏟아져 엉망인 것을 정리하며 힘든 표정 속에서도 '다시 해야지' 하던 모습도 잊히지 않는다.

청주의료원이 받은 보건복지부의 '2주기 의료기관 인증'은 환자와 직원의 안전이 요점이다. 병원에서 있을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엄청난 분량의 기준과 규정을 만들어 숙지하고 실천하게 하고 있다. 환자 확인, 손 씻기부터 시작해 낙상, 투약 오류 방지 등은 물론, 직원의 사고 예방을 위한 모든 규정들이 몸에 배어 자연스럽게 지켜질 때 우리도 누군가로부터 부러움은 물론 존경심까지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희망 속에 하나하나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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