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요법으로 사회 고발" vs "메시지는 없고 폭력만"

▲ CJ E&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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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전히 악인만 등장하는, 정의는 발붙일 곳 없는 폭력의 생태계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영화 '아수라'를 만든 김성수 감독의 변이다. 그의 의도대로 '아수라'는 스크린을 폭력과 핏빛으로 물들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든다.

칼과 도끼, 총, 맨주먹, 자동차, 깨진 병 등 모든 것이 폭력의 수단으로 동원된다.

시장과 검사, 경찰, 조직폭력배 등 폭력의 주체는 집단과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은 두 시간 넘는 러닝타임 내내 눈을 희번덕이며 서로 잡아먹을 듯 으르렁대다 결국 피가 철철 흐르는 난타전을 벌인다.

말다운 말도 없다. 욕설로 시작해 욕설로 끝난다.

어느 정도 예견되긴 했지만, 지난 21일 '아수라' 언론 시사회가 열린 후 영화가 보여주는 폭력의 잔혹성을 놓고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만듦새나 완성도를 떠나 '꼭 이렇게까지 잔인한 방식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는가'라는 의문도 제기된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아수라'에 대해 "흉기와 총기 등을 이용한 폭력묘사와 마약, 음주, 흡연 등 약물묘사 등이 자극적이고 거칠게, 지속해서 표현돼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주제와 대사, 공포, 모방위험 부분에서도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며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하 청불등급)을 매겼다.

김 감독은 처음부터 청불등급을 예상한 만큼 "표현하고 싶은 대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그나마 모난 곳을 둥글게 만들고 순화한 게 이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영화처럼 눈에 보이는 폭력은 아니지만, 한국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이보다 더 심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폭력의 생태계를 통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부조리를 끄집어내고자 했다는 의도로 읽힌다.

영화 속에서 김차인(곽도원) 검사는 자신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는 경찰 한도경(정우성)을 담요에 싸서 무자비하게 폭행한 뒤 "많이 괴롭고 아프죠?"라고 묻는다.

김 감독은 이 대목에서 "관객들도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주인공을 극한의 공포로 몰고 가려는 극적 장치이다. 그러나 불편함을 느끼다 못해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리게 된다.

사실 한국영화의 폭력성과 잔혹성에 대한 문제의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0년대 들어 살인마나 사이코패스, 조직폭력배, 그리고 조폭보다 더한 권력자 등이 단골 소재로 등장하면서 갈수록 폭력의 강도는 세졌다.

영화계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자극적인 영화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더 새롭고, 더 자극적인 액션을 선보이지 않으면 관객들이 식상해한다"고 말했다. 관객의 눈높이가 폭력성에 점점 무뎌지면서 영화 속 폭력의 강도 역시 세지는 악순환을 낳고 있는 것이다.

대형배급사 관계자는 "한국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장르가 스릴러"라며 "스릴러라는 범주에 범죄 액션이나 누아르가 들어가다 보니 폭력적 장면이 자주 나올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영화인들은 단순히 장르적 쾌감을 위한 폭력이 아니라 사회상을 반영하다 보니까 영화가 폭력적으로 됐다고 항변한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영화가 사회적 폭력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폭력을 통해 사회적 폭력의 실체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폭력을 통해 폭력을 고발하거나 '폭력은 이런 것'이라는 폭력의 실체를 느끼게끔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폭력성은 남성중심의 영화가 범람한 데 따른 부작용이라는 시각도 있다.

송아름 영화평론가는 "폭력적인 영화가 많이 나오는 것이 남성영화 편중과 맞물린다고 생각한다"며 정치, 사회, 경제 등 거대담론 속에서 권력투쟁과 남성영화의 이야기가 겹치면서 폭력영화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남성들이 권력다툼을 벌일 때 그것을 보여주는 가장 일차원적인 방식으로 폭력을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며 "권력투쟁이 남성들의 것인가, 남성의 투쟁이 육체적으로만 보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폭력이 영화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하더라도 갈수록 그 강도가 더 세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김지운 감독이 2010년 만든 '악마를 보았다'는 시신 훼손·신체 절단 등의 장면으로 한국 상업영화 사상 처음으로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다. 이후 청불 등급으로 조정되긴 했으나 강렬한 하드코어 액션으로 당시 관객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이후 '범죄와의 전쟁'(2012), '신세계'(2013), '타짜-신의 손'(2014), '내부자들'(2015) 등이 폭력성 높은 청불영화 계보를 이어왔다.

특히 이 작품들은 4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청불영화로는 이례적으로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폭력이라는 충격요법을 통해 사회를 고발, 성찰하려는 의도와 달리, 관객들은 두 시간 동안 폭력의 향연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극장 문을 나설 때 영화가 주는 메시지보다 폭력 그 자체의 잔상이 더 크게 뇌리에 남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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