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대전 대동시장]
6·25전쟁당시 피난민 중심 형성
참기름·그릇집 등 업종 수십여개
지식산업센터 건립에 철거 예정

▲ 대동시장 상인들이 가게 앞에서 고추를 말리고 있다. 정재훈 기자 jjh119@cctoday.co.kr
그들은 이곳에서 삶의 절반 이상을 보냈다. 40여년이 넘는 세월, 골목을 사이에 두고 서로 웃고 울며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어느 집 아들이 공부를 잘해 서울로 출세했다거나 누구 집 아버지가 아파서 고생이 많다… 모두 이 골목 안에서 머리를 맞대고 부대끼며 살았다.

▲ 나무로 만들어진 大洞市場 入口(대동시장 입구) 표지를 지나면 300m 길이의 시장 뒷골목이 나온다. 정재훈 기자 jjh119@cctoday.co.kr
이 골목, 대동시장이 조만간 사라진다.

무더위가 가시고 찬바람이 코끝을 맴돌 무렵 이곳을 찾았다. 흰색 나무간판에 투박하게 새겨진 ‘大洞市場 入口(대동시장 입구) 표지’를 지나 성인 한 명 간신히 지나가는 어두컴컴한 골목을 뚫고 들어가면 처음 반기는 집은 충북기름집. 주인과 함께 나이를 먹은 오래된 착즙기가 고소한 냄새가 나는 연기를 뿜으며 참기름을 짜낸다. 연기가 곳곳에 퍼지고, 고소한 향은 이내 시장 전체를 감싼다.

▲ 대동시장 내부에 위치한 점포 대다수는 40여년 이상 장사를 해온 토박이들이다. 정재훈 기자 jjh119@cctoday.co.kr
“40년 했으면 오래 했지. 이제 나도 기계도 나이를 먹었고, 이제 그만하고 싶어.”

충북기름집 사장 심율래(72) 씨는 대전 동구 대동시장에서만 40년째 가게를 운영 중이다. 반세기 동안 대동시장을 통해 가정을 건사한 심 씨는 이곳이 조만간 철거된다는 소식에 마음이 씁쓸하다.

심 씨는 “아직도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짜러 오는 손님이 많아. 그런데 몸도 예전 같지가 않고, 철거가 진행되면 이제 이 일도 접어야지”라고 소회했다.

6.25전쟁 당시 피난민촌이 형성된 대동 산1번지 인근에 위치한 대동시장은 반세기 동안 피난민과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대동천 대동장승 앞 복개천 위에 ㄱ자 모양으로 길게 늘어선 대동시장은 아직도 100여개 점포가 남아 세월의 흔적을 켜켜이 쌓아두고 있다. 달동네인 ‘대동 산 1번지’와 용운동 맹인촌을 지천에 둔 이곳은 빈자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고, 고달픈 인생을 서로 나누는 사랑채 역할을 톡톡히 했다.

시장 안 그릇집 가게 주인은 “조만간 개발된다는데 언제 될지 잘 모르겠다”며 “없어지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40년을 한자리에서 해왔는데 아쉬운 마음에 철거될 때까지 장사를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 충북기름집 사장 심율래(72) 씨가 참기름을 짜내고 있다. 정재훈 기자 jjh119@cctoday.co.kr
대동시장은 ‘지식산업센터’가 들어섬에 따라 철거 예정지가 됐다. 대전시가 이 지역을 중소기업청 국고보조를 받아 2019년까지 준공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 중인 가운데 철거가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이다. 철거가 이뤄지면 이곳은 대동시장에서 중소기업들이 둥지를 튼 지식산업센터로 새 옷을 입게 된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야채상회, 주막, 생선집, 백반집, 수선집, 속옷가게, 이용원, 간판집, 이불집, 열쇠집, 그릇집 수많은 가게가 그리고 시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꾹꾹 눌러 담은 공깃밥처럼 반세기 추억이 꾹꾹 담겨있는 대동시장의 풍경이 찬바람 부는 날씨 탓인지 쓸쓸하다. 시간은 매정하게도 재깍 흘러가고, 조만간 이곳 상인들은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다.

▲ 대동시장 뒷골목을 지키고 있는 시장 고양이. 사람이 코앞까지 다가가도 겁을 내지 않는다.

정재훈 기자 jjh119@cctoday.co.kr
인터넷 지도에도 스마트폰 앱에도 나오지 않는 이곳, 대전 대동시장.

온몸이 연탄처럼 새카만 시장 고양이는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이 와도 겁을 안내고 배를 드러낸 채 오늘도 골목을 지키고 있다. 정재훈 기자 jjh119@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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