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Dean, we've got to stop the sons of bitches, no matter what." 1950년 6월 25일, 북한 남침소식을 보고받은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딘(국무장관 이름), 그 개새끼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합니다." 절박함의 게이지가 풍격(風格)을 넘어섰다. 이처럼 '개'라는 접두어는 고약한 언어의 유희로 쓰인다. 개자식, 개소리, 개망신, 개지랄, 개판, 개망나니, 개차반, 개코망신 등등. 인간과 고락을 함께하고 죽어서까지 고통(육신) 받는 개가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은 전적으로 사람 탓이다. '개만도 못하다'는 말도 사람의 잘못을 개에게 뒤집어씌우는 화풀이 아닌가.

▶속담에서도 '개'는 철저하게 '개 취급'을 받는다. 개가 똥을 마다한다, 개꼬리 삼 년 두어도 황모(黃毛) 못 된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개도 무는 개를 돌아본다, 개를 따라가면 측간으로 간다, 삼 년 먹여 기른 개가 주인 발등을 문다 등등. (개가 웃을 속담들이다.) 반려(伴侶:짝이 되는 동무)의 시대, 1000만명이 반려동물을 키운다. 장난감 삼아 키우던 '애완'동물이 이젠 '반려'동물로 대접받는 것이다. 관련 시장만도 2조원대다. 애완견을 위한 호텔, 놀이터, 병원, 장례식장, 화장터, 전용 사진 스튜디오, 애견캠핑장, 전용 전원주택단지, 미용실, 카페에다 일명 '개모차(유모차)'도 낯설지 않다. 독(Dog)TV, 반려견 신용카드도 있다. 심지어 뇌와 관절건강에 좋다는 사료까지 나왔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동구 밖에서 주인 목소리가 들리면 개는 목울대를 울린다. 주인이 나타나면 개는 꼬리를 흔들며 친교를 표시한다. 비록 먹다 남은 음식을 주며 마당에서만 길렀지만 변함이 없다. 더부살이로 설움을 받으며 살던 '개'들이 더불어 사는 '견공(犬公)'으로 대우받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동행'이다. 사람은 사람과 더불어 살면서, 사람을 경계한다. 하지만 개는 배신하지 않는다. 태곳적부터 사람의 주변을 서성이며 사람을 지켜왔다. 그런데 사람은 너무나도 쉽게 사람을 떠난다. '반려(伴侶)'라는 말이 회자되는 건 사람의 성정(性情)이 점점 더 반려(反戾)되고 있다는 뜻이다. '반려'는 상대에 대한 측은지심이고, 옆에 있어주는 데 대한 고마움이다. 옛날엔 사람이 개를 길들였다면, 이젠 사람이 개에게 길들여진다. 외로우니까 함께 하고 싶은 것이다.

▶사람의 사랑은 '왜'냐고 묻는데서 출발한다. 하지만 반려동물은 '괜찮아'하는 데서 비롯된다. 평생 곁에 함께 하며 동반자가 돼주고, 늙어서는 친구가 돼주는 게 '반려'다. 사람이 사람을 버리고, 사람이 다시 반려자를 버리니 ‘개’같은 세상이다. 개가 사람을 물어뜯었거나, 사람이 사람을 깨문 것은 뉴스가 되지 않는다. 사람이 개를 물었을 때 뉴스가 된다. 우린 버려질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먼저 '반려자'를 내다버린다. 사람 말뜻을 알아듣는 개, 사람 말뜻을 못 알아듣는 사람. 마음의 가벼움으로부터 시작된 섬김과 복종의 자세를 ‘개’에게서 배운다. "우리 같이 걸을까."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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