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규 광림한의원 원장

치질이라 하면 좁은 뜻으로는 암치질, 숫치질 등을 가리키지만, 넓은 뜻으로는 항문에 피가 나는 혈변(血便), 직장이 빠져 나오는 탈항(脫肛), 항문 주위가 곪아 고름이나 진물이 나오는 치루(痔漏)까지를 모두 가리키는 광범위한 병명이다.

항문에는 가느다란 혈관이 매우 많이 분포하고 있는데 위나 장이 정상이 아닐 때 항문 부위에서 올라가는 혈류의 소통이 잘 되지 않아 항문 부위에 피가 몰리는 것이 그 원인이다. 이를 한의학적으로 표현하면 습열(濕熱)이 하초(下焦)로 내려오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흔히 과음, 과식과 같은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 변비나 설사를 자주 겪게 되는 사람들이나, 짧은 치마로 아래를 차게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발생한다.

과음과 과식은 위(胃)와 장(腸)을 지치게 만들고 지친 내장은 보통의 대변에도 상처가 나기 쉽다. 따라서, 항문 주위에 몰린 피가 기운이 부족해서 빠져 나가지 못하고 고이거나 안에서 터져 핏덩어리가 생기면 치핵(痔核)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항문 부위에 피가 정상으로 출입하지 못할 때에는 피가 탁해지고 진액도 탁해져서 습기가 차게 되고, 장에 평소부터 있던 세균은 이 습기에 번식을 매우 잘하므로 급기야 염증이 살을 파먹어 들어가게 되는데, 이런 단계가 곧 치루인 것이다.

이것을 다시 정리하면 장과 항문이 지쳐 활동력이 떨어지는 것이 가장 먼저이고, 그 다음으로 위와 장의 활동력이 떨어지면 습기가 차게 되고, 습기가 차게 되면 염증이 생기게 되는 단계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 성이 났을 때 따끈한 물로 목욕이나 좌욕을 하고 연고나 소염제를 쓰면서 푹 쉬고 나면 며칠내 가라 앉는다. 그러나, 위와 장이 지쳐 있는 상태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조금만 무리를 하거나 과음을 하게 되면 다시 재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방의 치료는 겉으로 드러난 항문의 염증에 그 목표를 두는 것이 아니라, 지쳐서 활동력이 떨어진 위와 장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즉 기운이 처져서 피가 고이고 막히고 터지는 것이므로, 원기를 도와 장과 항문의 기운을 위로 들어줘야(升擧) 피가 고이지 않고 상하 출입을 원활히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게 된다. 이와 함께 피는 따뜻할 때 순환이 원활하므로 하초를 따뜻하게 해 주는 방법, 습기가 있으므로 이 습기를 말리는 방법을 함께 염두에 두게 된다. 여기에 증후에 따라 지혈제나 수렴제 같은 표치제를 약간 가미한다.

모든 질환은 양방과 한방을 적절히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즉 고름이 심하게 차 있는 경우는 우선 외과적인 수술을 통해 고름과 치핵을 제거한 후 한방을 통해 이미 지쳐 있는 위와 장을 보하면서 하초의 습열을 말리는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효과적인 치료법이라고 하겠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