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http://blog.naver.com/springlll8

산에 폭 안긴 사찰에 가고 싶었다. 가끔은 모든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산에 올라 고즈넉한 사찰에서 조용히 하루를 마주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는가? 그날은 그런 날 중 하루였다. 그렇담, 봄에 갔었던 각원사에 갈까? 아니다. 그보다 좀 더 작은 사찰이면 좋겠다.

24번 버스 타고 성불사

인터넷을 찾아보니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조용한 사찰이 있었다. 망설일 게 없었다. 신부동 터미널 앞 정류장에서 24번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꽤 익숙한 길로 달려갔다. 단국대 앞 천호지를 지나 대학교 단지에 가니 버스엔 있던 사람들은 우르르 사라진다. 꽤 익숙한 길을 지나니 약간의 오르막길이 나온다. 이제 버스에 남은 사람은 태조산 밑에 자리 잡은 아파트 주민 세명뿐. 야트막한 오르막길에 올라가니 마지막 정거장에 도착했다. 버스는 방향을 틀고 사라졌다. 마을 주민들은 우리가 가는 길과 다른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성불사에 가려는 사람은 우리들뿐인 듯 보였다.

버스 정류장에서 걸어서 10분 내외

표지판도 딱히 없었고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인적이 없으니 참새 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고개를 젖히니 조마하게 사찰이 보인다. 숲에 가려 검은 기왓장이 보일 듯 말 듯하지만, 그래도 저기 어디에 성불사가 보이는 듯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걸어서 15분 내외에 있는 성불사로 올라가는 길은 조금 가팔랐지만, 그래도 힘들지 않았다.

차로 후다닥 올 수 있는 곳

사실 버스로 온 사람이 없었던 건 대중교통으로 오기 힘들다는 인식 때문이 아닐까? 생각보다 24번 버스는 자주 다녔다. 게다가 버스 정류장에서 성불사까지 10분 정도만 걸으면 되니,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은가? 성불사에 도착하니 드문드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보단 차로 오는 사람이 더 많았기 때문. 하지만 그 사람들은 생각보다 빨리 사라졌다. 후다닥 왔다 후다닥 사라지는 사람들. 사실 볼거리가 많은 사찰은 아니다. 넓지도 않고 경사진 곳에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절대 후다닥 왔다 갈만한 곳이 아니다. 보이는 건, 천호지! 태조산에 자리 잡은 성불사는 고려 시대의 사찰로 충남문화재자료 제10호 지정된 문화재다. 각원사보다 규모가 작아서 더 조용한 사찰이지만, 정말 탁 트인 시야를 선보인다. 저 멀리 아파트와 천호지가 보인다. 그 너머엔 능선이 어렴풋이 보인다. 오래된 사찰 주변에는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나무들이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경건한 마음으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마음이 흐릿흐릿해진다. 한동안 기억들이 조금씩 사라진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도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런 산과 사찰이 있다니. 그래, 마음이 울적할 땐, 집에서 가까운 산에 올라가 보자. 차도 좋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버스가 더 좋다.

그렇게 올라가다 보면 꽤 익숙한 풍경이 낯설게 다가온다. 모든 풍경이 선명해지니 모든 소리도 선명하게 들린다. 멀리 떠나야 여행인가? 이것도 여행이다.

(이 글은 9월 5일에 작성됐습니다-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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