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자 http://blog.naver.com/azafarm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홍성에서도 외지에 속하는 곳이다. 마을의 지형이 노루의 목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 노루목, 사람들이 기억하기 쉬우라고 이 이름을 따서 가게 이름을 <노루목슈퍼>라고 지었다. 승강장이 바로 옆에 있어 사람들 오고 가는 모습을 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보니 아들 하나 딸 하나 키워 시집장가까지 보내고도 남는 세월이 흘렀다. 동네 구멍가게 인생 스무 해, 대형마트에 편의점에 밀려 이제는 물건들은 다 빼고 그저 살림집으로 쓴다.

"그래도 요거해서 자식들 키웠으니 되었어. 옛날에? 재미있었지. 여기가 동네사랑방이었응께."

고된 하루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가 들러 막걸리 한 잔 하다가 기다리는 자식들을 위해 황도 하나를 샀음직한 곳, 그 때의 <노루목슈퍼>풍경을 기억해본다.

모두의 어머니, 할머니가 건네는 인사 "잠깐 쉬었다 가유~~" "뭐 좀 먹어"

어르신 몇 분은 가게 앞 나무 그늘에 앉아 계시고 그 중에 젊으신 분이 연신 가게 안을 들락거리시더니 소주 몇 병, 막걸리 몇 병을 가져다 어르신들에게 대접하더니 이 말 한마디 남겨놓고는 사라지신다.

"이거 하나 반납인데 돈 냈응께 이따 어르신들 찾으면 드려유~~"

잠시 후에는 택배 아저씨가 와서 택배를 가져가고, 젊은 청년들 몇이 오더니 농산물 수확 이야기를 안주삼아 맥주도 마신다. 낯선 사람의 방문에도 경계심 하나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주인 아주머니 뿐 아니라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강아지도 마찬가지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느껴지는 여기는 금마면 인산리에 위치한 <도막거리슈퍼> 다.

"내가 스물다섯에 시집을 와서 아들 셋 딸 하나를 낳았지. 원래는 밥장사를 했었어. 옛날에는 여기 앞에가 벼창고가 있었거든. 수확하고 나면 사람들이 벼창고에 다 와서 쌀내고 우리집에서 밥을 다 먹었었어. 요 가게는 영감죽고 했응께 한 십수년 되었지. 그 전에도 하던 사람이 있었어. 그 사람이 그만두고 내가 이어받았으니 거진 4, 50년은 족히 됐을껴. 새로 길이 나면서 이 자리에 내가 요렇게 지었지."

어느새 일흔을 훌쩍 넘긴 주인 아주머니를 '어머니'라 부르며 오는 60대부터 동갑을 지나 훨씬 나이가 많은 어르신까지 <도막거리슈퍼>의 단골은 할아버지들이다. 이들이 안주할 만한 김치를 내어놓고 얼굴만 안다면 외상도 쉽게 허락하는 일 같은 건 마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구멍가게만의 배려이다.

누구에게나 어머니, 할머니가 되어주는 <도막거리슈퍼> 주인 아주머니, 호철엄마에게 구멍가게가 마트보다 좋은 점이 뭐냐 물었다.

"쉬었다 가는 디 노인네들 갈 데 없은 게 여기 나무있고 하니 쉬러 오지. 가란 소리도 안하고 추우니깬 겨울에는 난로 피워놓고 하면 할아버지들이 놀다가고 하는겨. 정이지 정."

그래 구멍가게는 정이었다. 사람 사는 정. 쌀 떨어지면 급하게 달려가 외상으로 라면 몇 봉지라도 가져오고 또는 챙겨주고 누구네 집에 뭔 일이 있는지 다 알고 있고, 낯선 이가 찾아와 길이라도 물으면 왜 왔는지 누구인지 꼬치꼬치 조사반장까지 되어주던 사람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동네 어귀마다 한 둘씩 꼭 있었던 구멍가게를 이제는 정말 찾아보기 어렵다. 그 많았던 구멍가게가 사라진 만큼이나 사람 사는 정을 느끼기 어려운 지금, 100원짜리 들고 쪼로로 뛰어가면 커다란 알사탕 하나 꺼내주시던 손길이 그립다.

취재 / 글 : <끌미디어> 정수연

사진 : <끌미디어> 길익균

이 글은 충청남도 청년공동체 지원사업 [청년작목반] 의 지원을 받아 <끌미디어>가 활동한 기록입니다. <끌미디어>는 농촌지역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담아내는 청춘 미디어활동팀입니다.

(이 글은 9월 5일에 작성됐습니다-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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