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욱 배재대 교수

개구리는 어디로 뛸까? 답은 개구리 마음이다. 소위 젊은 사람들의 분별력 없는 행동을 우리는 이렇게 표현한다. 물론 개구리가 어디로 뛸지, 그것은 개구리 마음이다. 젊은이들이 어떻게 행동하든 역시 그들의 마음이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그들이 뛰는 방향이 정말 개구리 마음이고, 젊은 사람 마음일까 하는 것이다.

다시 물어보자. 개구리는 어디로 뛸까? 개구리는 이성(異性)이 있는 쪽으로 뛴다. 우리는 요즘의 젊은이들이 서양의 문화에 너무 젖어 있다고 말한다. 아무도 이 말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왜 우리의 젊은이들은 서양문화에 젖어들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좋기 때문이다.

산업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핵가족제도이다. 우리 나라의 산업화를 1970년대로 잡는다면, 우리의 핵가족제도의 역사 또한 그때부터 잡아야 할 것이다. 그때를 중심으로 태어난 오늘날의 20∼30대를 젊은이라고 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성장했는가? 그들의 성장은 소위 말하는 홀로서기였다. 그들은 혼자 사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그들의 친구는 TV와 게임기였다.

그래서 그들은 친구를 멀리했고, 어두워져도 동네방네 모여 다니면서 "철수야 놀자!"를 외치지 않아도 됐다. 혹 친구를 만나도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IT산업이라는 새로운 사회 속에 있다. 그들은 기계와 교감하는 편이 훨씬 좋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직접 사람과 부딪치면서 사회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 안에서 사회활동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기계를 통해 이성을 만난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물어보자. 개구리는 어디로 뛸까? 개구리는 이성(異性) 중에서도 사랑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뛴다. 우리가 어릴 때 배우고 자란 교육 중에서 가장 많이 들은 것이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지 말라"다. 그러나 요즘 우리는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을 많이 본다. 그와 함께 젊은 남녀들이 길거리에서 편안하게 스킨십을 하는 것도 흔히 본다. 소위 말하는 기성세대는 눈살을 찌푸릴 지 모르지만, 젊은이들은 아무렇지도 않다.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다.

같은 값에 개구리는 사랑을 느끼는 곳으로 뛴다. "대∼한민국!" 우리가 지난 해 수없이 많이 듣고 외친 소리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누구의 부탁도, 누구의 지시도 없이 모였다. 왜? 그들의 사랑을 그곳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박수를 치면서 팔을 활짝 벌렸다. 그들의 몸짓은 모든 것을 안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지금은 어디에서나 우리는 "대∼한민국!"을 외치고 듣는다. 굳이 축구장이 아닌 테니스장에서, 길거리에서, 지방자치단체에서 개최하는 행사에서도.

우리의 젊은이들은 자신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 혹은 자신이 사랑할 사람을 향해서 팔을 활짝 벌리고 뛴다. 개구리들이, 아니 우리의 젊은이들이 한껏 팔을 벌리고 그들을 사랑해 주고, 그들이 사랑할 사람을 향해서 뛰고 있다. 그런데 왜 기성세대는 그들의 품을 향해서 달려가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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