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석 대전경찰청 정보과장
[화요글밭]

산과 들이 가을바람에 흔들린다. 무더운 햇살에 한여름을 이긴 들녘이 풍요롭다. 이처럼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천국이라도 저세상보다는 빛나는 이세상이 좋다. 이 세상에서 울고 웃고 부대끼는 삶이 더 할 수 없이 귀하다.

아무도 피하지 못하는 죽음이 있기에 짧은 삶이 더욱 소중한 것이 아닌가? 인생은 신의 선물, 한번 뿐이라는 것을 더 젊었을 때 알지 못하였음을 후회하기도 한다. 나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얼마인가? 아무리 많이 챙기고 싶어도 30만 시간? 살아 있는 것만도 감사요, 축복이다.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면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두려움 없이 평온히 임종을 맞는 오복(五福)을 생각해 본다.

양극화와 소외, 고령화와 외로움 , 높은 스트레스, 입시, 실업, 무한경쟁에 내몰린 오늘날, 매일 821명이 자살을 시도하고 있고, 하루 평균 39.5명이 자살한다. 안타까운 죽음, 비참한 죽음, 자살 사건을 접할 때마다 가슴 저린 슬픔이 밀려온다.

인구 10만 명당 27.5명, OECD 평균 12.1명보다 무려 2배 이상 높고 10년 동안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청소년 사망원인 1위가 자살, 노인 자살률 세계 1위, 70세 이상의 노인 10만 명당 116.2명, 우울증 치료자 80%가 자살 시도 경험을 했다는 통계는 자살자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한다. 자살로 인한 피해는 자살자 본인뿐만 아니라 최소한 6명 이상의 주변 사람들에게 정신적·심리적 영향과 자살 위험을 전파시킨다고 한다. 가족들은 자신이 좀 더 관심과 애정을 주었다면 막을 수 있었다는 자책과 슬픔에 빠져 연이어 자살하기도 한다. 특히 유명 연예인등의 자살은 ‘베르테르효과’처럼 전염성이 높고 오래도록 아픔으로 남는다. 그래서 자살은 남의 얘기가 아니라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의 비참한 얘기다. 자살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끝내는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의 문제이며 공동체를 파괴하는 범죄이며 죄악이다. 어떤 이유로도 자살이 미화 될 수는 없다.

자살하는 사람의 중요 징후들이 대부분 사전에 나타난다. 오랜 지인에게 갑자기 안부를 묻고, 옛날 얘기를 하거나 떠나고 싶다고 한다. 소중한 물건을 나눠 주거나 주변 물건을 정리하기도 한다. 감정기복이 심하거나 감기처럼 걸리는 우울증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을 택하기도 한다. 잠시 잠깐 걸리는 감기를 이기는 것처럼 한때의 어려움을 이기면 자살의 유혹도 멀리 사라질 수 있다. 마지막 죽은 자만 아는 한 순간의 실수는 타이밍이 중요하기에 돌이킬 수 없다. 무관심하게 방치 하지 말고 손을 내밀고 전화를 하고 소통해야 한다.

매년 9월10일은 자살 예방의 날이다. 2011년에 자살 예방 및 생명 존중의 법을 만들고 다양한 예방 프로그램과 교육 홍보, 자살예방센터를 통한 노력에도 줄지 않고 있다.

어떻게 하면 자살을 막을 수 있을까? 생명존중, 삶의 가치와 소중함을 일깨워야 한다. 존중하고 배려하는 소통의 문화를 가져야 한다. 무관심과 소외, 무시와 냉대가 자살에 이르게 한다. 그래서 건강한 가정과 살맛나는 이웃 공동체는 꼭 필요하다.

가장 자살이 많다는 마포대교에는 생명의 문구가 있다. “잘 지내지? 밥은 먹었어? 별일 없었어? 많이 힘들었구나! 말 안 해도 알아. 기분이 울적하면 하늘을 봐요. 힘든 일들 모두 지나가는 바람이야.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 바로 당신입니다.”

희망의 전화 129, 청소년 상담 1388, 생명의 전화 1588-9191, 많은 전화들이 24시간 아파하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자살은 가장 비참한 죽음, 아무리 아파도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한 번 더 생각하면 자살이란 글자가 거꾸로 보일 것이다. 그 사이로 한명의 생명이라도 더 살리려는 경찰순찰차의 경광등 불빛이 온밤을 밝힌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