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에서 푸른 물이 나온다 해서 물푸레나무, 꽃에서 노루오줌 냄새가 난다해서 노루오줌나무다. 늘 잘 났다는 티를 내면서 동네 어귀에 서있다 해서 느티나무, 떡을 찔 때 시루 밑에 깔았다 해서 떡갈나무, 도토리묵을 임금님 수라상에 올렸다 해서 상수리나무다. 이팝나무는 나무에 열린 꽃이 쌀밥과 같다. 율곡(栗谷) 이이는 밤나무 구전설화와 관계가 있다. 훗날 율곡은 10만양병설을 주장하며 군대의 식량자원으로 밤을 추천했다.

▶오랫동안 계속하여 무진장하게 꽃이 피니 무궁화(無窮花)다. 돈나무는 열매가 끈적끈적하고 달큼한 액체를 분비하는데 곤충과 파리 떼가 꼬여 원래는 똥나무였다. 수액을 채취하여 마시면 뼈에 좋다는 뜻의 골리수(骨利樹)에서 변한 고로쇠나무, 껍질도 속도 하얗고 길게 늘어져서 국수를 연상한다하여 국수나무, 사위가 짐을 질 때 힘을 덜 수 있도록 연약한 줄기를 가진 사위질빵나무, 5리마다 심어서 이정표로 삼은 오리나무. 이처럼 나무들은 개별적인 이름을 갖는다. 이건 나무가 살아가는 내력이자 뿌리다. 위대한 계보이기도 하다.

▶폭염이 지나간 나무엔 온몸 가득 상처가 가득하다. 불볕은 수피(樹皮)의 색깔을 바꿔놓았다. 피고름을 짜내며 나이테를 만들던 백송(白松)과 은백양(銀白楊)은 흑피목(黑皮木)으로 검게 탔다. 날개를 폈을 때 푸르던 잎맥은 물기가 말라 고개를 떨궜고, 잎자루는 햇빛을 겨냥하는 방법을 잊었다. 대대손손 그래왔듯 숲은 나무가 모여 만들어진다. 나무는 개별성을 띠고 있으나, 개별적이지 않다. 나무는 절대로 다른 나무에 종속되지 않는다. 만약 개별성을 띤다면 숲은 애초부터 존재할 수 없다. 나무는 이웃과 이웃하면서 또한 경쟁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고로, 폭염을 견뎠기에 가을이 달고, 가을숲이 깊다.

▶보통의 사람들은 나무와 숲의 이야기를 하면서,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나무를 볼 때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볼 때는 숲만 본다. 이런 감상법은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역주행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면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본다. 나무는 현미경이고, 숲은 망원경이다. 현미경처럼 보는 사람이 살아남던 시대는 끝났다. 지금은 망원경처럼 봐야한다. 그래야 수목(樹木)을 튼실하게 키울 수 있다. 한가로이 나무를 보며 추일서정(秋日抒情)을 읊는다면 숲(발전)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느티나무는 공룡시대부터 살아남은 '고대 나무'다. 그만큼 생존 적응력이 뛰어나다. 진달래, 밤나무, 쥐엄나무도 그렇다. 대들보는 태어날 때부터 대들보가 아니라, 선택하는 자에 의해 대들보가 된다. 인간 생태계, 직장 생태계에서도 나무와 숲의 이론은 적용된다. '나무'만 보는 사람은 '나무'만 보다가 '숲(미래)'엔 가보지도 못한다. 귀하는 나무인가, 숲인가.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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