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의 생각을 가늠하기 어려워 연기 힘들었다"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에서 타이틀 롤인 김정호를 연기한 배우 차승원은 "역사적 인물은 다시 연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번 영화에서 김정호라는 인물을 그려내기가 그만큼 힘들었다는 얘기다. 그는 "그 당시를 살아본 것도 아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가늠이 안 됐다"고 그 이유를 댔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조선 최고의 지도로 평가받는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 선생의 잘 알려지지 않은 삶을 다룬 영화다. 김정호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잘 알려졌지만 그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아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차승원은 31일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하소연이라도 하듯 '고산자' 촬영 과정에서의 고충을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지도꾼 김정호보다는 사람 김정호"에 더 중점을 두고 연기했다고 강조했다.

차승원은 극 중에 김정호의 실제 삶을 쫓아 우리나라 곳곳의 절경을 누빈다. 그는 그 중에서도 백두산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했다. 그는 "(가보면) 백두산이 왜 민족의 영산인지 깨달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차승원과의 일문일답.

-- 영화에 대한 평가는.

▲ 5점 만점에 3.5점에서 4점 정도다.

-- 그 점수를 준 이유는.

▲ 제가 출연해서인지 여러 면에서 단점보다 장점이 보인다.

-- 이 영화의 장점은.

▲ 이야기의 실타래가 엉켜 있는 것이 아니라서 영화가 쉽다. 여러 계층의 관객들이 볼 수 있는 영화다. 추석 연휴에 어울리는 영화가 아닐까.

-- 실존 인물 연기가 득보다 실이 많다고 이야기했는데.

▲ 영화 앞부분에 헐렁한 이야기가 없었으면 연기를 못했을 것이다. 인간 김정호가 틈이 많은 사람이라서 제가 (출연을) 선택하게 됐다. 가족관계나 인물 구성이 좋아서 영화 후반부에 몰아치는 감정을 조금 완화해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역사적 인물은 다시 연기하고 싶지 않다. 너무 힘들다. 그 당시 살아본 것도 아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가늠이 안 됐다. 그 위인이 생각한 바를 1만분의 1이라도 쫓아갈 수 있을까 싶어 힘들었다. 차별화를 주기 위해 지도꾼 김정호보다는 사람 김정호를 구현하려고 생각했다.

-- 관련 자료가 없어 더 힘들었을 텐데.

▲ 사극이 네번째다. 그 전에 '광해'를 했는데, 단점이 있다. 기존에 해왔던 것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가 관건이다. 김정호는 자료가 많지 않아 어떤 점에서는 사료가 많은 인물보다 접근하기가 더 편했다. 이렇게 지도에 미친 사람이 과연 일상이 온전했겠느냐는 관점에서 접근했다.

-- 영화에서 여러 곳을 다니는데.

▲ 백두산 빼고는 힘들지 않았다. 백두산은 첫날을 제외하고는 촬영 여건이 좋지 않았다. 첫날 다 찍어 놓아서 다행이다.

-- 그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을 꼽자면.

▲ 단연 백두산이다. 주변에 꼭 가보라고 권유한다. 가면 왜 민족의 영산인지를 깨달을 것이다. 일반적인 산세와 다르다. 가보면 백두산이 왜 늘 달력에 나오는지, 애국가에 왜 '동해물과 백두산이'라고 하는지를 알 것이다.

-- 금강산을 못 갔다.

▲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바람에… 진짜 아쉬었다. 금강산과 선죽교를 꼭 영화에 담고 싶었는데 금강산에 단풍이 들 즈음에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

-- 김정호는 능청스러운 인물로 그려진다.

▲ 어떤 것에 미친 사람이, 꼭 그러라는 법은 없겠지만 일상생활에서는 헐렁할 것 같았다. 지도를 만들 때는 뒤도 안 돌아보고 집중하지만 일상은 영화에서처럼 딸의 얼굴도 못 알아보는 인물이지 않을까.

-- 강우석 감독이 애드립을 싫어했다고 하는데.

▲ 대사를 만드는 애드립은 없었다. 애드립이라고 한다면 추임새나 웃음, 행동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렇게 중반 이후 끝까지 그런 말투와 행동, 자세, 손짓을 썼던 것 같다. 특별히 내가 여기서 이런 것을 더 첨가해야겠다는 것은 없었다. 감독이 안 좋아하기도 했고…

-- 흥선대원군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 픽션이다. 김정호가 흥선대원군을 만났다는 역사적 기록은 없다. 다만 이런 지도를 만든 사람을 당시 최고 권력자인 흥선대원군이 한 번쯤 만나지 않았을까 추측했다. 흥선대원군의 오른팔인 신원이라는 인물이 역사적으로 보면 김정호를 많이 도왔는데 그가 만남을 주선해 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본 것이다.

-- 스토리 전개가 김정호의 '애민정신'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것 같다.

▲ 지도를 목판본으로 만들었다는데, 지도를 대량으로 생산해서 혼자 갖고 있었겠는가. 중인인 김정호가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면 양반의 지위를 얻으려고 뭔가 조처를 했을 텐데 그러하지 않았다. 지도를 목판본으로 만든 것은 지도를 찍어 널리 보급하려고 한 것 아니었을까,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애민정신이 있는 사람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 김정호라는 인물이 현재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 사익보다 남을 위해 산 인물들에 대해 막연하나마 동경이나 경외감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라서 했겠지만,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겠는가. 이런 사람도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pseudoj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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