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관 청주의료원장
[시선]

손님이 찾아 왔다는 연락이 왔다. 누구인가 확인하니 오랫동안 입원했던 환자의 부인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환자가 많이 좋아져 기쁜 마음에 병동에 떡을 돌리고 필자에게도 가져오신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당뇨병 합병증으로 발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했는데 최근 상태가 좋아지며 재활치료를 시작하게 된 환자다.

두어 달 전에는 주치의로부터 수술부위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는 환자는 물론, 가족과 간병사까지 기분이 언짢던 것이 생각났다. 그러던 그가 '상처가 다 아물었으니 이제 재활치료를 시작하자'는 주치의의 말을 듣고는 얼마나 기뻤을까? 그는 미소도 떠나지 않았다. 요즘은 자전거 운동도 한다고 전했다.

그는 물렁물렁해진 종아리를 보여주며 “빨리 근육이 차올라야 걸을 수 있을 텐테…”라고 말했다. 환자들로부터 이런 희망의 외침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이후 의료원 문 앞에서 어르신 한 분을 만났다. 그는 “제가 옆에 있는 복지관에도 자주 오고 또 이 부근에 사는 데 복지관 밖에서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저녁에 술 먹고 또 잠을 자기도 한다”며 시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당연히 시정돼야 할 일로 조치를 취했다.

그런데 그 즈음 환자 한 분이 ‘원장님, 죽을 사람 한 사람 살려 주십시요’라며 다가왔다. 그는 “아는 사람이 입원 했는데 다음날 강제퇴원을 당했고 갈 데가 없는 사람이라 먹지도 못하고 죽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강제 퇴원의 이유를 물으니 ‘술 먹고 병실에서 불미스런 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게 되면 참 난감해 진다. 아픈 사람은 누구든 의료혜택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환자가 지켜야 할 의무를 하지 않아 다른 환자에게 피해를 주는 환자를 그냥 둘 수도 없다.

원장으로서 엄격하게 원칙적인 말을 하지만 마음 여린 임상과장들은 또 입원시킨다. 병원에 찾아오는 이들은 대부분 의학적 도움이 필요해 찾아오는 환자들이기 때문이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이 틈새가 좁아드는 날은 언제일지 생각이 들었다.

아흔이 넘은 환자가 기침 때문에 병원에 오셨다. 검사해 보니 폐까지 퍼진 소화기계 암 환자였다. 보호자에게 사실을 말씀드리고 '이 상황에서 항암치료는 삶의 질 측면에서 큰 도움이 안 될 것'이라며 다른 의사의 의견도 들어 보시도록 권했다.

의학적으로도 병명을 환자에게 알리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야 환자 자신도 주변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자가 그 사실을 알면 더 힘들어해 빨리 돌아가시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드린다. 고령이지만 생각이나 말씀이 너무도 온전하신 그런 분을 속이고 있다는 생각에 죄송스런 마음이 컸던 것이다.

그리고 그분을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으로 옮겨 더 좋은 분위기에서 삶을 마무리 하도록 도와드렸다. 병명을 듣고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진 첫 날은 아무래도 힘들어 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아주 평안히 생활하고 계신다.

또 가족들도 그녀의 마지막 삶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간직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삶의 마지막을 아름다운 기억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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