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태 대전 서구청장
[화요글밭]

지난 8월 22일부터 25일까지 3박 4일 동안 전국적으로 을지연습이 진행됐다. 을지연습은 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공비의 청와대 기습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태극연습이 군사연습과 통합되면서 종합적인 정부연습으로 정착했다.

을지훈련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의 전장 상황을 가상해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이에 따라 훈련 참가자들이 서면으로 관련된 모든 조치를 취하는 ‘도상훈련’과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인력소집과 물자와 장비의 사용계획을 세우고 실제 행동으로 숙달시키는 ‘실제훈련’으로 나뉘어 시행된다. 이 연습을 바탕으로 전시대비계획의 미비한 점, 연습 시 나타난 보완 및 개선사항 등을 관련 기관과 담당자들이 토의를 거쳐 보완해 완벽하게 전시에 대비하는 것이 을지연습의 목적이다.

대전 서구도 전 공무원 비상소집과 상황실 운영으로 을지연습을 시작했다. 4일 동안 백화점 광장에서 주민들과 함께 비상급식 체험과 긴급혈액 확보 훈련도 하고, 민·관·군·경이 함께하는 국가중요시설 통합방호 훈련을 했다.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찌는 듯 한 무더위 속에서 굵은 땀방울을 훔치며 진지한 모습으로 훈련에 참여하는 시민들과 군인, 공무원들의 모습에 절로 격려의 박수가 나왔다.

현재 북한정권은 국제적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핵 개발을 주장하고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며 일체의 대화와 타협도 거부하는 등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게다가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과 같은 주요인사가 망명하는 등 최근 연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엘리트층의 탈북으로 한반도의 긴장은 더 고조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을지연습이 단지 매년 반복되는 일과성 연습이 아닌 실제 나라를 지키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필요한 활동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이라는 말처럼 평상시에 위기상황에 대비한 훈련이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두 사례가 있다. 지난 8월 17일 푸에트리코의 한 선박에 큰 화재가 발생했다. 그러나 512명이나 되는 승객 및 승무원 중 1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후일담으로 나온 얘기지만 화재가 발생 한 후 모든 승무원이 당황하지 않고 평소 훈련대로 승객을 모두 대피시킨 후 마지막으로 선장이 침몰하는 배를 뒤로하고 나왔다고 한다. 탑승 인원 476명 중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된 끔찍한 결과를 낳았던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 침몰사고를 기억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너무나 부끄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 두 사건을 보면 위기대비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가 있다. 매뉴얼이 있고 없고의 차이를 전쟁터에서 총이 있느냐 없느냐에 비유한다면 매뉴얼을 실행해 보고 안 해보고의 차이는 총에 실탄이 있고 없고의 차이일 것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좋은 매뉴얼이 있어도 평소에 실행해보지 않으면 실제로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을지연습을 통해 우리의 준비상태가 잘 돼 있는가 점검해 보고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것과 직결된다는 얘기다.

춘추좌씨전에서 위강은 진나라 왕 도공에게 “편안할 때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居安思危 거안사위)”고 아뢰었다. 또한 로마의 군사사상가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대비하라”고 했다. 갈증을 느꼈을 때 우물을 파기 시작한다면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여유가 있을 때 저축하지 않으면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더욱 비참해진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임에도 우리는 그 간단한 진리를 너무 쉽게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한국전쟁기념관 비석에는 ‘Free is not free(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그렇다. 자유가 공짜가 아니듯이 평화도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평화로울 때 위기의 순간을 대비하고 준비해야만 평화를 계속 지킬 수 있고 그 평화로운 나라에서 내 자식과 손자들이 계속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금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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