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날 도착한 편지 두 통
항암치료 고군분투 딸에게
“조금 둘러서 가는 것일뿐”
고3 담임교사도 학생들에
“과정도 결과만큼 값진 것”

▲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수험생을 위해 학부모와 담임교사가 쓴 편지 두 통이 전해졌다. 홍서윤 기자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사랑이 담긴 편지 두 통이 전해졌다. 편지를 보내온 사람은 수험생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 바로 어머니와 선생님이다.

◆어느 학부모의 편지 “조금 느린 것일뿐이야”
이 학부모가 딸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랑하는 내 딸 수영아(가명). 드디어 수능시험일이 다가왔구나.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이날을 위해 애쓰지 않은 수험생들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우리 수영이는 너무나 많은 장애물을 넘고서 이 자리에 왔잖니? 그 시간을 생각하면 또다시 가슴이 아파온다.”

지난해 봄, 딸 수영이는 갑작스럽게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친구들이 입시준비로 바쁠 무렵, 수영이는 머뭇거릴 새도 없이 항암치료를 시작해야 했다. “곱게 곱게 길러왔던 머리카락은 모두 다 빠져 버리고. 깜깜한 새벽, 고열로 정신을 못 차리는 너를 데리고 병원에 가면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

수영이는 1년여에 걸친 항암치료를 무사히 이겨냈지만, 이번엔 또 항암부작용이 찾아왔다. 하필이면 폐의 기능이 떨어지는 폐숙주가 온 탓에, 수영이는 성악가라는 꿈도 접어야 했다. “많이 초조하고 힘들지? 얼마나 더 치료해야할지 장담할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 수영이 참 잘 가고 있어. 좀 둘러서 가는 것뿐이야. 느리게 가면 어때?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삶의 시간표대로 가지 않는다고 초조해 말자. 우리는 하나님이 수영이를 위해 만들어놓으신 시간표대로 가고 있는 거야.”

어머니는 미안하고 사랑하며 늘 수영이를 위해 기도한다고 편지를 끝맺었다. “우리 수영이는 의지가 강한 아이니까 꼭 이겨낼 거야. 때론 네가 느끼는 절망과 아픔과 괴로움들을 엄마도 완전히 공감해주고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 많이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고3 담임교사의 편지 “이제 세상과의 만남을 가르쳐줄게”
교사는 함께 공부하며 흘렸던 땀방울의 가치를 제자들이 잊지 않기를 바랐다. 대전둔원고등학교 3학년 안동수 교사가 보내온 편지에는 “선생님이 늘 말했었지. 과정과 결과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는 비교할 수 없다고. 과정보다 결과가 빛났든 그렇지 않든, 그동안의 과정도 결과 못지않게 매우 값진 것이었잖아. 지금은 이게 가장 중요하고 커다란 평가로 보일지 모르지만, 인생에 있어 이만큼의 커다란 기회는 얼마든지 있음을 기억하자”고 쓰여 있다.

지식만을 전달하려 했던 것에 미안하다고도 적었다. “선생님은 그동안 너희들한테 진짜로 미안한 게 있었어. 너희들에게 발견하고, 질문하는 경이로움을 가르쳐주지 못해서 미안했고, 너희들의 모순과 모색, 방황과 서투름을 이해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그리고 너희들의 가장 좋은 점을 가르쳐주지 못하고, 세상과 교류하고 나누고 대화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못한 것도 미안하단다.”

수능을 마친 제자들을 향해 조심스럽게 또 다른 수업계획도 전했다. “이제 수능도 끝났으니, 선생님이 미처 가르쳐주지 못한 걸 배워보지 않을래? 이제는 너희들의 질문과 의문을 환영하고, 너희들의 열정을 칭찬해주고 세상과의 만남을 가르쳐줄 수 있는데 말야. 졸업하는 그날까지 ‘선생’과 ‘학생’으로서 더 많은 것을 함께 해보자.” 홍서윤 기자 classic@cctoday.co.kr

〈편지 원문〉

어느 학부모의 편지 “조금 느린 것일뿐이야”

사랑하는 내 딸. 수영아(가명).

드디어 수능시험일이 다가왔구나.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이날을 위해 애쓰지 않은 수험생들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우리 수영이는 너무나 많은 장애물들을 넘고서 이 자리에 왔잖니?.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또 다시 가슴이 아파온다.

작년 봄, 친구들은 한창 입시준비로 바쁠 무렵 갑작스럽게 찾아온 백혈병.

네 피 속에는 벌써 백혈병 세포가 가득 자리잡고 있었고, 진단 받자마자 머뭇거릴 새도 없이 바로 항암치료가 시작되었지.

항암치료 시작과 동시에 찾아온 수많은 부작용들.

곱게 곱게 길러왔던 머리카락은 모두 다 빠져버리고, 백혈병 수치는 바닥을 치고, 백혈구가 없으니 곰팡이폐렴에 걸리고, 패혈증에 걸리고.

깜깜한 새벽, 고열로 정신을 못 차리는 너를 데리고 병원에 가면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그렇게 힘든 항암치료를 마치고, 조혈모세포이식도 마치고 이젠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던 순간에 이번엔 만성이식편대숙주질환이 찾아왔지. 그것도 하필 폐로.

폐기능은 점점 떨어지고 힘겹게 다시 시작한 너의 소중한 꿈(성악가)도 다시 접어야만 했어.

백혈병에 걸렸을 때보다 오히려 이 때가 엄마도 너도 더 힘든 시간이었던 것 같아.

아직 1년정도 폐숙주 치료가 남아있고, 그 후에도 완전히 좋아질 수 있을지, 더 오랜기간 치료를 해야할지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우리 꼭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고 힘내자~~

우리 수영이는 의지가 강한 아이니까 꼭 이겨낼거야.

수영아.

친구들은 한창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는데 치료는 길어지고, 하고 싶던 꿈도 접어야 하고..

많이 초조하고 힘들지?

그래도 우리 수영이 참 잘 가고 있어.

정말 잘하고 있어.

조금 둘러서 가는 것뿐이야.

느리게 가면 어때? 괜찮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삶의 시간표대로 가지 않는다고 초조해하지 말자.

우리는 하나님이 수영이를 위해 만들어 놓으신 시간표 대로 가고 있는 거야.

느리게 가야 볼 수 있는 것들도 많단다.

목표를 향해 빨리 앞으로만 달려가면 볼 수 없는 것들을 우린 천천히 가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가고 있는거야.

이 힘든 순간도 언젠간 지나가겠지.

엄마가 항상 너를 위해 기도하는 거 알지?

힘내자. 파이팅!

때론 네가 느끼는 절망과 아픔과 괴로움들을 엄마도 완전히 공감해주고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 많이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수영이를 사랑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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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담임교사의 편지 “이제 세상과의 만남을 가르쳐줄게”

수능은 잘 봤니? 고생 많았다.

그래도 아직 끝은 아니지? 기말고사도 남았고, 논술이나 면접 등이 남은 친구들도 있으니말야.

그래도 일단 한고비 넘긴 건 정말 다행이다. 

샘이 늘 말했었지. 과정과 결과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는 비교할 수 없다고.

과정보다 결과가 빛났든 그렇지 않든, 그동안의 과정도 결과 못지않게 매우 값진 것이었잖아.

지금은 이게 가장 중요하고 커다란 평가로 보일지 모르지만, 인생에 있어 이만큼의 커다란 기회는 얼마든지 있음을 기억하자.

수능이 끝났는데도 ‘선생’같은 얘기만 하는 듯해서 미안하구나.

근데 말야.

선생님은 그동안 너희들한테 진짜로 미안한 게 있었어.

너희들에게 발견하고, 질문하는 경이로움을 가르쳐주지 못해서 미안했고, 너희들의 모순과 모색, 방황과 서투름을 이해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그리고 너희들의 가장 좋은 점을 가르쳐주지 못하고, 세상과 교류하고, 나누고, 대화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못한 것도 미안하단다.

하지만 말야. 이제 수능도 끝났으니 샘이 미처 가르쳐주지 못한 걸 배워보지 않을래?

이제는 너희들의 질문과 의문을 환영하고, 너희들의 열정을 칭찬해주고 세상과의 만남을 가르쳐줄 수 있는데 말야.

졸업할 때까지 정말 잘 가르쳐주고 싶단 말이지.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했으니 남은 입시 일정도 잘 마무리하고 졸업하는 그 날까지 ‘선생’과 ‘학생’으로 더 많은 것들을 함께 해보자.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

-대전둔원고등학교 3학년 안동수 교사가 제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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